'스포츠人사이드'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한국 탁구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안재형(57)의 이력을 보면, 자의든 타의든 늘 누군가와 함께 호흡을 맞춰 성과를 낸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단체전 금메달,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 혼합 복식(양영자와) 동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남자 복식 동메달 등. 동료와 원만한 관계(harmony)를 갖고, 최상의 실력(performance)를 보여줬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단식이야 혼자서만 잘하면 되지만, 복식이나 단체전은 그렇지가 않은 까닭이다(물론, 승부욕은 전제 조건). 이런 성과를 내려면, 일차적으로는 함께 뛰는 파트너와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부단히 배려와 헌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뒤에 독창적인 기술 개발 및 합작을 위해 동료와 원활한 소통도 했을 것이다.
안재형의 이런 모습은 개인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안재형 하면 ‘올드 팬’들에겐 1989년, 여자탁구 세계 랭킹 1위였던 중국의 국가대표 자오즈민 씨와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전, 현직 장·차관 10여 명과 기자 100여 명, 일반인 40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철언 당시 체육부 장관이 축사를 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금일봉도 전달했을 정도다. 당시 한중 수교 이전(1992년 수교)이었던데다 사회가 극렬한 반공 분위기여서 한중 커플은 화제였다. 그런데, 100년가약을 맺기까지는 둘이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진지 무려 5년 만이었다. 당시 한중 간 외교전까지 고려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도무지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혼사였다. 연애 당시부터 신문, 방송에서 떠들썩했던 부부의 결혼 스토리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데는 여러 ‘은인’과의 협조와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오즈민 씨와의 확고한 믿음과 포기를 모르는 인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안재형은 요 몇 년 사이엔 국경을 넘은 사랑의 결실인 아들로 인해 유명세를 탔는데, 여기에도 자식에 대한 무한한 헌신이 오롯이 녹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미국 PGA 투어 무대에서 활약해 온 아들 안병훈(31) 뒷바라지 얘기다. 안재형은 1991년 은퇴 이후 이듬해부터 실업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코치,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다가 2007년 돌연 사표를 내고 골프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아들 안병훈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안병훈은 2009년 만 17세11개월, 역대 최연소로 제109회 미국 US아마추어 챔피언십대회 우승으로 아버지에게 화답했다. 안병훈은 그렇게 국내, 유럽 프로 투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까지 세계 최고라는 PGA 투어 선수로 활약했다. 자식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부모 어디 있겠는가만은 위에 기술한 것처럼, 안재형이 살아온 ‘삶에 대한 태도’를 곱씹어 보면 아들에게 어떤 노력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안재형은 2015년 귀국해서는 다시 천직인 탁구에 힘을 쏟고 있다. 탁구대표팀 코치를 거쳐 감독이 돼서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사람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던가.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탁구가 28년 만에 올림픽 ‘노 메달’ 수모를 겪으며 좌절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탁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나서 한국이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재형에게 ‘바닥’까지 내려간 한국 탁구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도리어 ‘지하’까지 내려간 것이었다. 안재형은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지만, 한국 탁구는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노 메달’에 그쳤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리스트인 유승민(40) 대한탁구협회장은 곧바로 “3개년 프로젝트 구상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유 회장은 지난해 10월 후원사를 결정하고 한국프로탁구리그 출범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오늘(28일) 한국 탁구의 숙원이었던 프로탁구리그가 출범한다. 그럼, 출범 위원장은? 유 회장의 스승인 안재형이다. 바닥까지 내려간 한국 탁구가 새 출발과 함께 재도약을 하려면 열정과 헌신의 아이콘이 최적이었던 것 같다. 안재형은 “유 회장이 제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국 탁구를 이끄는 회장으로서 남다른 비전을 제시해 함께 잘 모셔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긴 스토리를 갖고 다시 출발대에 선 안재형을 MBN 스포츠 토크쇼 ‘스포츠야’에 초대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탁구가 국기나 다름없는 중국은 물론 최근 중국의 대항마로 떠오른 일본도 프로리그를 운영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에 국내 프로리그의 출범은 어떻게 보면 필수고, 필연적이었다. 프로리그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Q. 프로탁구리그위원장은 어떻게 수락하게 된 건가?
“작년 11월부터 관련 일을 맡아 왔다. 그전에 프로리그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해서 1월 초부터 정식으로 위원장을 맡게 됐다. 제대로 된 행정 업무는 처음이라 많은 책임감도 느끼고 설렘도 있는데, 일단 재미있다. 탁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Q. 어깨가 무거울 것 같은데?
“선수 때 내 개인을 위해 꿈을 펼쳤다면, 지도자 때는 그 꿈을 이루고자하는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걸 돕고자 했다. 프로탁구리그위원장은 모든 탁구인의 소망을 담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더 많이 느낀다. 처음 시작하는 거라 부족함이 있으리라 염려되지만 지켜봐달라.”
Q. 협업은 잘 되고 있나?
“나 혼자 다하진 않고 리그 사무국에서 일을 많이 한다. 추진위원회에서부터 준비한 거라 많이 진척이 된 상태에서 내가 들어와 위원장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다. 유승민 회장이 많은 역할을 해줬고, 많은 분이 도와줘 잘 되고 있다고 본다.”
Q. 프로탁구리그 출범은 탁구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모든 탁구인이 ‘이제 탁구도 프로를 시작해야하지 않나’는 의욕을 보여왔다. 얘기만 주고 받고 생각만하다가 실현을 못시켰었다. 지금도 완전한 프로라고 말씀드리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런 소망들을 가지고 있었던 걸 하나씩 풀어나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Q 급작스럽게 출범한 감이 있는데?
“유승민 회장의 공약 중에 하나가 프로탁구리그 출범이어서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고민도 많이 한 걸로 안다. 그러던 차에 좋은 후원사(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가 나와서 빨리 진행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조금 급박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는데, 그렇다고 마냥 출범을 늦출 수가 없어서 늦은 감이 있지만 1월에 출범을 하게 됐다.”
Q.그렇다면 리그는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나?
“28일 개막해 5월 30일까지 첫 시즌을 끝내는 걸로 계획하고 있다. 정규리그 포함해서 마지막 플레이오프, 챔피언시리즈까지 진행할 텐데, 마지막 챔피언시리즈가 어떻게 끝날지 몰라서 일단 5월 30일 이내에는 정규시즌을 종료하려고 한다. 리그 중간 중간 국제대회가 있어서 선수들이 대표팀에 차출되기 때문에 몇 차례 휴지기도 갖게 된다.”
Q.축구처럼 1, 2부리그 비슷하게 운영된다는데?
“명확하게 1부와 2부로 나눠진 것은 아니다. 일단 리그 구성은 기업팀과 시군구청팀으로 구분된다. 기업팀 간 경기는 코리아리그, 시군구청팀 간 경기는 내셔널리그로 명명했다. 굳이 1, 2부로 나눈 건 아니다. 팀 간 경기력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팀 수가 너무 많다보니까 한꺼번에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렇게 구분을 지었다. 앞으로 승격제라던지, 1부와 2부 팀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승강제를 만들면서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
Q.코리아리그 기준으로, 리그 구성과 방식은 어떻게 되나?
“남자팀은 7개 팀으로, 삼성생명, 미래에셋, 보람할렐루야, 한국수자원, 한국마사회, KGC인삼공사, 국군체육부대까지 7개 팀이다. 여자팀은 대한항공, 포스코에너지, 한국마사회, 미래에셋, 삼성생명 이렇게 5개 팀으로 구성된다. 남자 팀은 3라운드, 여자 팀은 4라운드를 하는데, 여자 팀이 남자 팀에 비해 2개 팀이 적기 때문에 한 라운드를 더 치른다.
Q.야구처럼 포스트시즌도 치른다는 건가?
“풀리그로 진행되는 정규리그가 끝나고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플레이오프는 3전2선승제인데, 정규리그에서 순위가 높은 팀이 1승을 안고 하게 된다. 챔피언시리즈도 정규리그 1위 팀이 1승을 안기 때문에 그만큼 유리하게 시리즈가 진행될 것이다. 2승 먼저 하면 우승하게 된다.”
Q.게임 방식은 어떻게 되나?
“전체적으로는 올림픽 단체전 방식하고 같다. 단지 올림픽에선 복식을 첫 경기로 하고, 뒤에 단식 4경기를 하는데, 프로탁구리그에선 단식 2경기를 먼저 하고, 중간에 복식을 넣고, 다시 단식 2경기가 뒤에 따른다. 올림픽에서는 단식에 나선 3명의 선수가 단식과 복식을 모두 뛰었는데, 이번 프로리그에선 단식만 뛰고 싶으면 단식만, 복식만 뛰고 싶으면 복식만 뛰어도 된다. 그래서 최소 3명에서 5명의 선수가 단체전에 나설 수 있다.”
Q.승점 획득 방식은 다른 종목 리그와 다른 게 있나?
“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승리 팀이 3점이 아니라 최대 4점까지 획득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 만든 룰인데, 총 5경기 중에 가령, A팀이 첫 3경기를 다 따내면 3대0으로 승리가 확정돼 승점을 3점 가져가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 4번째 경기를 무조건 하도록 했다. 4번째 경기를 ‘에이스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A팀이 4번째 경기인 에이스전까지 이기면 4대0이 되는 것이라 승점 4점을 획득할 수가 있도록 했다. 승리 팀은 이런 식으로 최대 승점 4점을 가져갈 수 있는데 나중에 순위 싸움에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끝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Q.에이스전이 흥미로운데?
“에이스가 단식 2경기에 출전하는 것인데, 두 팀 에이스 간에 무조건 대결하도록 함으로써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를 꼭 보여드리려고 한다. 추가 승점까지 걸려 있으니 말이다. 매 라운드 시작하기 전에 에이스를 정하면 라운드 끝까지 가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한 명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는 하지 않고, 매 경기 직전에 팀별로 에이스를 정하도록 했다. 팀별로 전략에 따라서 에이스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Q.다른 파격적인 경기 진행요소는?
“국내외 대회에선 볼 수 없었던, 처음 시도하는 게 있는데, 바로 3게임(세트)제 경기다. 보통 5게임제를 해왔는데, 이 경우 최대 5경기로 구성되는 단체전이 너무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여자부 경기는 3~4시간 가는 경우도 있다. 도쿄올림픽 때도 3시간 넘어가는 경기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게 3게임제다. 다만, 3게임제로 하면 너무 일찍 끝날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에이스전인) 4경기까지 해야 측면이 생기니 괜찮아 보인다. 그리고 선수들이 초반부터 집중력을 갖고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있을 수 있다. 몸이 덜 풀리면 ‘어?’ 하다가 몇 분 만에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초반에 잘 풀어가는 선수에게 유리할 수 있다.”
Q.팬들이 많이 즐기고 접하려면 결국 중계가 필수인데?
“방송중계권도 계약이 돼서 전 경기(정규리그 222경기)를 중계를 한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중계를 준비하고 있다. AI 무인중계로 진행이 된다. 탁구 경기에 갈증을 느꼈던 많은 분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Q.다른 종목처럼 외국인 선수 영입도 하나?
“당연히 기량이 좋은 외국 선수들하고 많은 경기를 하면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아진다. 게다가 아시아 탁구가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가. (축구의 챔피언스리그처럼) 아시아 리그도 한번 고민해서 아시아 팀들끼리 교류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외국 선수 영입 계획은 아직은 없다.”
Q.프로리그가 한국 탁구의 올림픽 메달 획득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프로리그의 첫 번째 목표는 탁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많이 보여드리는 것이다. 신규 팬도 만들어 탁구 팬층을 넓혀야하는 그런 프로리그가 돼야 한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력이 프로리그를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도 만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독일, 중국, 일본이 자체 프로리그를 갖고 있다. 우리는 조금 늦은 측면이 있지만, 프로리그를 갖추면서 선수들의 기량을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Q.역사적인 첫 시즌 들어가는 각오는?
“꾸준하게 보여드려야 하는데 첫 시즌에 (국제대회 때문에) 중간에 중단되는 부분이 있어서 너무 아쉽긴 하지만,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래도 ‘과거에 없던 프로다운 리그가 우리나라에도 생겼다’ 이렇게 봐주시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Q.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당부한다면?
“처음 하는 프로리그라 부족함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번 출범을 통해서 새로운 탁구 팬들이 많이 생겨나고, 한국 탁구도 발전하고 또 프로리그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이번 프로탁구리그에서 흥미로운 점은 안재형 위원장이 문답 중에 언급한 AI(인공지능) 무인중계 부분이다. 픽셀스코프란 개발 업체가 지난해 여러 국내 대회 실험을 거쳐 이번에 획기적인 중계 기술을 선보인다. 탁구대 주변 17대 고정 (일반 및 초고속)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을 AI가 최적의 장면을 구성해 실시간 중계 화면을 내놓은 방식이다. 실례를 들자면, 선수가 서브 시작 위치에 서면 AI가 자동으로 인식해 해당 선수를 클로즈업하고, 플레이가 시작하면 와이드한 화면으로 전환한다. 선수가 점수를 획득하면, 이긴 선수의 리액션을 추적 촬영하는 카메라 영상을 시청자에게 보여준다. 뒤이어서 핵심 플레이 장면을 리플레이로 보여주면서 공의 스피드도 화면에 공개하고, 세트가 끝나면 경기 해설진이 설명할 수 있게 각종 데이터를 화면에 띄워준다. 신기한 AI 무인중계 기술이다.
‘한국 탁구 헌신의 아이콘’과 모든 탁구인들이 말 그대로 핑퐁처럼 주거니 받거니하며 만들어온 한국프로탁구리그. ‘올드(old)’한 탁구계에 날개를 다는 ‘영(young)’한 혁신적인 중계 기술까지.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 탁구의 르네상스가 오길 기대한다.
국영호 기자
스포츠야 PD : 황현욱·이만행
<1월27일 방송된 'MBN 스포츠야’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선수'로서
한국 탁구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안재형(57)의 이력을 보면, 자의든 타의든 늘 누군가와 함께 호흡을 맞춰 성과를 낸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단체전 금메달,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 혼합 복식(양영자와) 동메달,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남자 복식 동메달 등. 동료와 원만한 관계(harmony)를 갖고, 최상의 실력(performance)를 보여줬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단식이야 혼자서만 잘하면 되지만, 복식이나 단체전은 그렇지가 않은 까닭이다(물론, 승부욕은 전제 조건). 이런 성과를 내려면, 일차적으로는 함께 뛰는 파트너와의 ‘화학적 결합’을 위해 부단히 배려와 헌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뒤에 독창적인 기술 개발 및 합작을 위해 동료와 원활한 소통도 했을 것이다.
'부부'로서
안재형의 이런 모습은 개인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안재형 하면 ‘올드 팬’들에겐 1989년, 여자탁구 세계 랭킹 1위였던 중국의 국가대표 자오즈민 씨와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전, 현직 장·차관 10여 명과 기자 100여 명, 일반인 40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철언 당시 체육부 장관이 축사를 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금일봉도 전달했을 정도다. 당시 한중 수교 이전(1992년 수교)이었던데다 사회가 극렬한 반공 분위기여서 한중 커플은 화제였다. 그런데, 100년가약을 맺기까지는 둘이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진지 무려 5년 만이었다. 당시 한중 간 외교전까지 고려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도무지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혼사였다. 연애 당시부터 신문, 방송에서 떠들썩했던 부부의 결혼 스토리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데는 여러 ‘은인’과의 협조와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오즈민 씨와의 확고한 믿음과 포기를 모르는 인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아빠'로서
안재형은 요 몇 년 사이엔 국경을 넘은 사랑의 결실인 아들로 인해 유명세를 탔는데, 여기에도 자식에 대한 무한한 헌신이 오롯이 녹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미국 PGA 투어 무대에서 활약해 온 아들 안병훈(31) 뒷바라지 얘기다. 안재형은 1991년 은퇴 이후 이듬해부터 실업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코치,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다가 2007년 돌연 사표를 내고 골프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아들 안병훈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안병훈은 2009년 만 17세11개월, 역대 최연소로 제109회 미국 US아마추어 챔피언십대회 우승으로 아버지에게 화답했다. 안병훈은 그렇게 국내, 유럽 프로 투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까지 세계 최고라는 PGA 투어 선수로 활약했다. 자식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부모 어디 있겠는가만은 위에 기술한 것처럼, 안재형이 살아온 ‘삶에 대한 태도’를 곱씹어 보면 아들에게 어떤 노력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감독'으로서
안재형은 2015년 귀국해서는 다시 천직인 탁구에 힘을 쏟고 있다. 탁구대표팀 코치를 거쳐 감독이 돼서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사람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던가.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탁구가 28년 만에 올림픽 ‘노 메달’ 수모를 겪으며 좌절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탁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나서 한국이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재형에게 ‘바닥’까지 내려간 한국 탁구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도리어 ‘지하’까지 내려간 것이었다. 안재형은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지만, 한국 탁구는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노 메달’에 그쳤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위원장'으로서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리스트인 유승민(40) 대한탁구협회장은 곧바로 “3개년 프로젝트 구상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유 회장은 지난해 10월 후원사를 결정하고 한국프로탁구리그 출범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오늘(28일) 한국 탁구의 숙원이었던 프로탁구리그가 출범한다. 그럼, 출범 위원장은? 유 회장의 스승인 안재형이다. 바닥까지 내려간 한국 탁구가 새 출발과 함께 재도약을 하려면 열정과 헌신의 아이콘이 최적이었던 것 같다. 안재형은 “유 회장이 제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국 탁구를 이끄는 회장으로서 남다른 비전을 제시해 함께 잘 모셔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긴 스토리를 갖고 다시 출발대에 선 안재형을 MBN 스포츠 토크쇼 ‘스포츠야’에 초대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탁구가 국기나 다름없는 중국은 물론 최근 중국의 대항마로 떠오른 일본도 프로리그를 운영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에 국내 프로리그의 출범은 어떻게 보면 필수고, 필연적이었다. 프로리그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일문일답
Q. 프로탁구리그위원장은 어떻게 수락하게 된 건가?
“작년 11월부터 관련 일을 맡아 왔다. 그전에 프로리그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렇게 해서 1월 초부터 정식으로 위원장을 맡게 됐다. 제대로 된 행정 업무는 처음이라 많은 책임감도 느끼고 설렘도 있는데, 일단 재미있다. 탁구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Q. 어깨가 무거울 것 같은데?
“선수 때 내 개인을 위해 꿈을 펼쳤다면, 지도자 때는 그 꿈을 이루고자하는 선수들이 꿈을 이루는 걸 돕고자 했다. 프로탁구리그위원장은 모든 탁구인의 소망을 담아 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을 더 많이 느낀다. 처음 시작하는 거라 부족함이 있으리라 염려되지만 지켜봐달라.”
Q. 협업은 잘 되고 있나?
“나 혼자 다하진 않고 리그 사무국에서 일을 많이 한다. 추진위원회에서부터 준비한 거라 많이 진척이 된 상태에서 내가 들어와 위원장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다. 유승민 회장이 많은 역할을 해줬고, 많은 분이 도와줘 잘 되고 있다고 본다.”
Q. 프로탁구리그 출범은 탁구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모든 탁구인이 ‘이제 탁구도 프로를 시작해야하지 않나’는 의욕을 보여왔다. 얘기만 주고 받고 생각만하다가 실현을 못시켰었다. 지금도 완전한 프로라고 말씀드리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런 소망들을 가지고 있었던 걸 하나씩 풀어나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Q 급작스럽게 출범한 감이 있는데?
“유승민 회장의 공약 중에 하나가 프로탁구리그 출범이어서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고, 고민도 많이 한 걸로 안다. 그러던 차에 좋은 후원사(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가 나와서 빨리 진행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조금 급박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는데, 그렇다고 마냥 출범을 늦출 수가 없어서 늦은 감이 있지만 1월에 출범을 하게 됐다.”
Q.그렇다면 리그는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나?
“28일 개막해 5월 30일까지 첫 시즌을 끝내는 걸로 계획하고 있다. 정규리그 포함해서 마지막 플레이오프, 챔피언시리즈까지 진행할 텐데, 마지막 챔피언시리즈가 어떻게 끝날지 몰라서 일단 5월 30일 이내에는 정규시즌을 종료하려고 한다. 리그 중간 중간 국제대회가 있어서 선수들이 대표팀에 차출되기 때문에 몇 차례 휴지기도 갖게 된다.”
Q.축구처럼 1, 2부리그 비슷하게 운영된다는데?
“명확하게 1부와 2부로 나눠진 것은 아니다. 일단 리그 구성은 기업팀과 시군구청팀으로 구분된다. 기업팀 간 경기는 코리아리그, 시군구청팀 간 경기는 내셔널리그로 명명했다. 굳이 1, 2부로 나눈 건 아니다. 팀 간 경기력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팀 수가 너무 많다보니까 한꺼번에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렇게 구분을 지었다. 앞으로 승격제라던지, 1부와 2부 팀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승강제를 만들면서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
Q.코리아리그 기준으로, 리그 구성과 방식은 어떻게 되나?
“남자팀은 7개 팀으로, 삼성생명, 미래에셋, 보람할렐루야, 한국수자원, 한국마사회, KGC인삼공사, 국군체육부대까지 7개 팀이다. 여자팀은 대한항공, 포스코에너지, 한국마사회, 미래에셋, 삼성생명 이렇게 5개 팀으로 구성된다. 남자 팀은 3라운드, 여자 팀은 4라운드를 하는데, 여자 팀이 남자 팀에 비해 2개 팀이 적기 때문에 한 라운드를 더 치른다.
Q.야구처럼 포스트시즌도 치른다는 건가?
“풀리그로 진행되는 정규리그가 끝나고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플레이오프는 3전2선승제인데, 정규리그에서 순위가 높은 팀이 1승을 안고 하게 된다. 챔피언시리즈도 정규리그 1위 팀이 1승을 안기 때문에 그만큼 유리하게 시리즈가 진행될 것이다. 2승 먼저 하면 우승하게 된다.”
Q.게임 방식은 어떻게 되나?
“전체적으로는 올림픽 단체전 방식하고 같다. 단지 올림픽에선 복식을 첫 경기로 하고, 뒤에 단식 4경기를 하는데, 프로탁구리그에선 단식 2경기를 먼저 하고, 중간에 복식을 넣고, 다시 단식 2경기가 뒤에 따른다. 올림픽에서는 단식에 나선 3명의 선수가 단식과 복식을 모두 뛰었는데, 이번 프로리그에선 단식만 뛰고 싶으면 단식만, 복식만 뛰고 싶으면 복식만 뛰어도 된다. 그래서 최소 3명에서 5명의 선수가 단체전에 나설 수 있다.”
Q.승점 획득 방식은 다른 종목 리그와 다른 게 있나?
“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승리 팀이 3점이 아니라 최대 4점까지 획득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 만든 룰인데, 총 5경기 중에 가령, A팀이 첫 3경기를 다 따내면 3대0으로 승리가 확정돼 승점을 3점 가져가는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 4번째 경기를 무조건 하도록 했다. 4번째 경기를 ‘에이스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A팀이 4번째 경기인 에이스전까지 이기면 4대0이 되는 것이라 승점 4점을 획득할 수가 있도록 했다. 승리 팀은 이런 식으로 최대 승점 4점을 가져갈 수 있는데 나중에 순위 싸움에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끝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Q.에이스전이 흥미로운데?
“에이스가 단식 2경기에 출전하는 것인데, 두 팀 에이스 간에 무조건 대결하도록 함으로써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를 꼭 보여드리려고 한다. 추가 승점까지 걸려 있으니 말이다. 매 라운드 시작하기 전에 에이스를 정하면 라운드 끝까지 가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한 명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는 하지 않고, 매 경기 직전에 팀별로 에이스를 정하도록 했다. 팀별로 전략에 따라서 에이스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Q.다른 파격적인 경기 진행요소는?
“국내외 대회에선 볼 수 없었던, 처음 시도하는 게 있는데, 바로 3게임(세트)제 경기다. 보통 5게임제를 해왔는데, 이 경우 최대 5경기로 구성되는 단체전이 너무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여자부 경기는 3~4시간 가는 경우도 있다. 도쿄올림픽 때도 3시간 넘어가는 경기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게 3게임제다. 다만, 3게임제로 하면 너무 일찍 끝날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에이스전인) 4경기까지 해야 측면이 생기니 괜찮아 보인다. 그리고 선수들이 초반부터 집중력을 갖고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박진감이 있을 수 있다. 몸이 덜 풀리면 ‘어?’ 하다가 몇 분 만에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초반에 잘 풀어가는 선수에게 유리할 수 있다.”
Q.팬들이 많이 즐기고 접하려면 결국 중계가 필수인데?
“방송중계권도 계약이 돼서 전 경기(정규리그 222경기)를 중계를 한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중계를 준비하고 있다. AI 무인중계로 진행이 된다. 탁구 경기에 갈증을 느꼈던 많은 분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중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Q.다른 종목처럼 외국인 선수 영입도 하나?
“당연히 기량이 좋은 외국 선수들하고 많은 경기를 하면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아진다. 게다가 아시아 탁구가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가. (축구의 챔피언스리그처럼) 아시아 리그도 한번 고민해서 아시아 팀들끼리 교류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외국 선수 영입 계획은 아직은 없다.”
Q.프로리그가 한국 탁구의 올림픽 메달 획득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프로리그의 첫 번째 목표는 탁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많이 보여드리는 것이다. 신규 팬도 만들어 탁구 팬층을 넓혀야하는 그런 프로리그가 돼야 한다. 또한, 선수들의 경기력이 프로리그를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도 만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독일, 중국, 일본이 자체 프로리그를 갖고 있다. 우리는 조금 늦은 측면이 있지만, 프로리그를 갖추면서 선수들의 기량을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Q.역사적인 첫 시즌 들어가는 각오는?
“꾸준하게 보여드려야 하는데 첫 시즌에 (국제대회 때문에) 중간에 중단되는 부분이 있어서 너무 아쉽긴 하지만,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래도 ‘과거에 없던 프로다운 리그가 우리나라에도 생겼다’ 이렇게 봐주시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Q.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당부한다면?
“처음 하는 프로리그라 부족함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번 출범을 통해서 새로운 탁구 팬들이 많이 생겨나고, 한국 탁구도 발전하고 또 프로리그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전 경기 AI 무인중계
이번 프로탁구리그에서 흥미로운 점은 안재형 위원장이 문답 중에 언급한 AI(인공지능) 무인중계 부분이다. 픽셀스코프란 개발 업체가 지난해 여러 국내 대회 실험을 거쳐 이번에 획기적인 중계 기술을 선보인다. 탁구대 주변 17대 고정 (일반 및 초고속) 카메라에서 촬영한 영상을 AI가 최적의 장면을 구성해 실시간 중계 화면을 내놓은 방식이다. 실례를 들자면, 선수가 서브 시작 위치에 서면 AI가 자동으로 인식해 해당 선수를 클로즈업하고, 플레이가 시작하면 와이드한 화면으로 전환한다. 선수가 점수를 획득하면, 이긴 선수의 리액션을 추적 촬영하는 카메라 영상을 시청자에게 보여준다. 뒤이어서 핵심 플레이 장면을 리플레이로 보여주면서 공의 스피드도 화면에 공개하고, 세트가 끝나면 경기 해설진이 설명할 수 있게 각종 데이터를 화면에 띄워준다. 신기한 AI 무인중계 기술이다.
‘한국 탁구 헌신의 아이콘’과 모든 탁구인들이 말 그대로 핑퐁처럼 주거니 받거니하며 만들어온 한국프로탁구리그. ‘올드(old)’한 탁구계에 날개를 다는 ‘영(young)’한 혁신적인 중계 기술까지.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 탁구의 르네상스가 오길 기대한다.
국영호 기자
스포츠야 PD : 황현욱·이만행
<1월27일 방송된 'MBN 스포츠야’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