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2017년은 '대행'이란는 단어가 유독 눈에 많이 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진 지난 5월9일 제19대 대통령선거로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무려 5개월 가량을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선수단의 수장인 감독들의 세계에서도 감독대행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감독 대행(Caretaker manager)은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이 임기 중 경질이나 자진 사퇴로 팀을 떠났을 경우, 차기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정식 감독 신분은 아니지만, 감독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팀을 이끄는 이는 가리킨다. 이제 정규시즌을 두 달 가량 소화한 프로야구에서 감독이 중도 하차하고 대행으로 시즌을 꾸려가는 팀이 생겼다. 바로 한화 이글스다.
지난 23일 김성근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이상군 투수코치가 감독대행에 올랐다. 이 대행은 KBO리그 역대 55번째 감독 대행이다. 감독의 해임 혹은 사퇴로 대행을 맡게 된 사례로만 따지면 역대 38번째다. 감독의 중도 하차는 여러 이유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 부진에 따른 것이다.
한화도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2007시즌 이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화는 2014시즌이 끝난 뒤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감독을 3년 계약에 모셔왔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화 부임 이후 잦은 논란에 휩싸였다. 선수 혹사와, 불통에 성적을 보장한다는 김 감독의 지도력 마저 발휘되지 않았다. 고액을 들여 FA와 외국인 선수를 보강했지만, 한화의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김성근 감독은 4연패를 당하던 와중에 옷을 벗었다. 김 감독이 물러난 뒤 한화는 4연패를 더해, 8연패 수렁에 빠졌다. 그러나 이후 4연승 행진을 달리며 팀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한화는 31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윌린 로사리오가 포수로 출전해 선발 알렉시 오간도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효과가 컸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물론 신임 감독이 조만간 부임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감독대행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팀을 장악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 역대 감독대행 사례는 어땠나
36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감독대행은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감독이 시즌 중에 물러나는 돌발적인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팀 사정을 잘 아는 코치 중 한 명이 감독 대행을 맡는 게 위험부담이 적긴 하다. 모두 55번의 감독대행 사례가 있었고, 33명이 감독대행 경험이 있다. 이중 가장 많은 감독대행 경험이 있는 이는 유남호 전 KIA 감독으로 5차례나 대행을 맡았다.
역대 55차례의 감독대행 사례 중 17번은 감독의 개인 사정에 따른 일시적인 감독대행이었다. 가장 최근은 역시 김성근 감독이었다. 지난해 5월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돼 김광수 수석코치가 15일간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감독은 건강 이상이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1997년 당시 백인천 삼성 감독은 그해 6월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져 한동안 조창수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다행히 시즌 중 복귀했지만, 복귀 후에도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9월 2일 LG와의 더블헤더 제1경기가 끝난 뒤 병원으로 가면서 조 대행이 플레이오프까지 선수들을 이끌어야 했다.
감독이 사표를 던지고 떠났지만, 감독대행 없이 경기를 치른 팀도 있다. 2014년 LG트윈스다. 그해 4월 삼성과 대구 원정을 벌이던 LG는 당시 김기태 감독이 사의표명을 한 뒤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감독은 물러나겠다고 하고, 구단은 만류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결국 당시 조계현 수석코치가 팀을 이끌었지만, 공식적으로 승패는 김기태 감독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역대 감독 대행을 거친 33명 중 대행에서 정식감독으로 취임한 사례는 14명뿐이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김준환(쌍방울) 등이다. 이중 김준환 감독은 팀이 해체되면서 감독으로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14명 외이긴 하지만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감독이 물러난 뒤 감독대행으로 잔여시즌을 치르고, 2011년 롯데에 부임했다.
물론 시즌 중에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이 취임한 사례는 더욱 희박하다. 36시즌 동안 4차례 밖에 없었다. MBC 청룡이 1983년 6월과 1985년 6월에 김동엽 감독, 2002년 6월 롯데가 백인천 감독을 선임했다. 가장 최근은 앞서 언급한 2014년 5월 취임한 양상문 LG 감독이다.
◆ 모호한 위치, 감독대행 성공 보장할 수 있나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위의 14명 중 강병철 감독(롯데)과 이희수 감독(한화) 뿐이다. 강 감독은 1983년 7월 박영길 초대감독이 사임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인 1984년 롯데 2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이희수 감독이 대행을 맡게 된 이유도 강병철 감독과 관련이 있다. 이희수 감독은 1998년 7월 건강 문제로 물러난 강병철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 정식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감독 첫해인 1999년 한화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재까지 한화의 유일한 우승이다. 우승은 아니더라도,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은 경우는 천보성 감독(LG, 1997·1998년)과 김명성 감독(롯데, 1999년), 김성근 감독(LG, 2002년) 등 3명이다.
사실 감독대행은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대부분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지휘봉을 이어 받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대행은 정식 감독도, 코치도 아닌 모호한 위치다. 감독대행이 자신의 지도력을 펼칠 만한 환경과 권한도 발휘할 수 없다.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소폭 상승하는 경우에도 대행 자체의 지도력보다는 일시적인 분위기 전환 효과라는 시선이 있다.
감독대행을 맡은 이의 자세도 중요하다. 2006년 LG에서 감독대행으로 70경기를 치른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처음 몇 경기를 이기면 대행 꼬리표를 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가 무리수를 두게 되고, 선수들도 ‘감독되려고 욕심을 부린다’라고 뒤에서 수근거린다. 이러면 팀 분위기가 이상해진다”며 대행의 딜레마를 설명하기도 했다. 양 전 감독은 “감독대행으로 초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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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의 수장인 감독들의 세계에서도 감독대행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감독 대행(Caretaker manager)은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이 임기 중 경질이나 자진 사퇴로 팀을 떠났을 경우, 차기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정식 감독 신분은 아니지만, 감독과 같은 권한을 가지고 팀을 이끄는 이는 가리킨다. 이제 정규시즌을 두 달 가량 소화한 프로야구에서 감독이 중도 하차하고 대행으로 시즌을 꾸려가는 팀이 생겼다. 바로 한화 이글스다.
지난 23일 김성근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이상군 투수코치가 감독대행에 올랐다. 이 대행은 KBO리그 역대 55번째 감독 대행이다. 감독의 해임 혹은 사퇴로 대행을 맡게 된 사례로만 따지면 역대 38번째다. 감독의 중도 하차는 여러 이유가 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적 부진에 따른 것이다.
한화도 성적 부진이 이유였다. 2007시즌 이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화는 2014시즌이 끝난 뒤 야신이라고 불리는 김성근 감독을 3년 계약에 모셔왔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화 부임 이후 잦은 논란에 휩싸였다. 선수 혹사와, 불통에 성적을 보장한다는 김 감독의 지도력 마저 발휘되지 않았다. 고액을 들여 FA와 외국인 선수를 보강했지만, 한화의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김성근 감독은 4연패를 당하던 와중에 옷을 벗었다. 김 감독이 물러난 뒤 한화는 4연패를 더해, 8연패 수렁에 빠졌다. 그러나 이후 4연승 행진을 달리며 팀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한화는 31일 대전 두산 베어스전에서 3-1로 승리했다. 윌린 로사리오가 포수로 출전해 선발 알렉시 오간도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효과가 컸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물론 신임 감독이 조만간 부임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감독대행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팀을 장악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 역대 감독대행 사례는 어땠나
36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프로야구에서 감독대행은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감독이 시즌 중에 물러나는 돌발적인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팀 사정을 잘 아는 코치 중 한 명이 감독 대행을 맡는 게 위험부담이 적긴 하다. 모두 55번의 감독대행 사례가 있었고, 33명이 감독대행 경험이 있다. 이중 가장 많은 감독대행 경험이 있는 이는 유남호 전 KIA 감독으로 5차례나 대행을 맡았다.
역대 55차례의 감독대행 사례 중 17번은 감독의 개인 사정에 따른 일시적인 감독대행이었다. 가장 최근은 역시 김성근 감독이었다. 지난해 5월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돼 김광수 수석코치가 15일간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감독은 건강 이상이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1997년 당시 백인천 삼성 감독은 그해 6월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져 한동안 조창수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다행히 시즌 중 복귀했지만, 복귀 후에도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9월 2일 LG와의 더블헤더 제1경기가 끝난 뒤 병원으로 가면서 조 대행이 플레이오프까지 선수들을 이끌어야 했다.
감독이 사표를 던지고 떠났지만, 감독대행 없이 경기를 치른 팀도 있다. 2014년 LG트윈스다. 그해 4월 삼성과 대구 원정을 벌이던 LG는 당시 김기태 감독이 사의표명을 한 뒤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감독은 물러나겠다고 하고, 구단은 만류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결국 당시 조계현 수석코치가 팀을 이끌었지만, 공식적으로 승패는 김기태 감독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역대 감독 대행을 거친 33명 중 대행에서 정식감독으로 취임한 사례는 14명뿐이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김준환(쌍방울) 등이다. 이중 김준환 감독은 팀이 해체되면서 감독으로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14명 외이긴 하지만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감독이 물러난 뒤 감독대행으로 잔여시즌을 치르고, 2011년 롯데에 부임했다.
물론 시즌 중에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이 취임한 사례는 더욱 희박하다. 36시즌 동안 4차례 밖에 없었다. MBC 청룡이 1983년 6월과 1985년 6월에 김동엽 감독, 2002년 6월 롯데가 백인천 감독을 선임했다. 가장 최근은 앞서 언급한 2014년 5월 취임한 양상문 LG 감독이다.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탑동 투아이센터 실내교육장에서 열린 야구학교(스포츠 투아이) 개관식에서 참석한 김인식 감독과 강병철 전 롯데 감독(오른쪽). 강 감독은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이 중 최초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진=김재현 기자
◆ 모호한 위치, 감독대행 성공 보장할 수 있나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위의 14명 중 강병철 감독(롯데)과 이희수 감독(한화) 뿐이다. 강 감독은 1983년 7월 박영길 초대감독이 사임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인 1984년 롯데 2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이희수 감독이 대행을 맡게 된 이유도 강병철 감독과 관련이 있다. 이희수 감독은 1998년 7월 건강 문제로 물러난 강병철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 정식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감독 첫해인 1999년 한화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재까지 한화의 유일한 우승이다. 우승은 아니더라도,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려놓은 경우는 천보성 감독(LG, 1997·1998년)과 김명성 감독(롯데, 1999년), 김성근 감독(LG, 2002년) 등 3명이다.
사실 감독대행은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대부분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지휘봉을 이어 받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대행은 정식 감독도, 코치도 아닌 모호한 위치다. 감독대행이 자신의 지도력을 펼칠 만한 환경과 권한도 발휘할 수 없다.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소폭 상승하는 경우에도 대행 자체의 지도력보다는 일시적인 분위기 전환 효과라는 시선이 있다.
감독대행을 맡은 이의 자세도 중요하다. 2006년 LG에서 감독대행으로 70경기를 치른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처음 몇 경기를 이기면 대행 꼬리표를 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가 무리수를 두게 되고, 선수들도 ‘감독되려고 욕심을 부린다’라고 뒤에서 수근거린다. 이러면 팀 분위기가 이상해진다”며 대행의 딜레마를 설명하기도 했다. 양 전 감독은 “감독대행으로 초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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