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프로농구 ‘봄 잔치’가 한창인 지난 14일 인천 전자랜드는 유도훈(50) 감독과 3년 재계약 소식을 발표했다. 프로농구에서 또 다른 장수 감독의 탄생이었다. 2008년 안양 KT&G 감독을 거쳐 2009년 전자랜드에 코치로 부임한 유도훈 감독은 감독대행을 거쳐 2010~2011시즌 구단의 제7대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이후 올해까지 8시즌을 보냈다. 이제 향후 3년을 더해 2020년 봄까지 한 팀에서만 10년 넘게 재직하게 됐다.
프로 세계에서 감독은 흔히 ‘파리 목숨’ 취급을 받는다. 선수단의 실질적인 관리자이지만, 감독은 성적에 따라 자신의 목을 내놔야 하는 계약직인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 팀을 10년 이상 맡는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어느덧 36년째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해태(KIA의 전신) 김응용 감독(현 대한야구소프트볼회장)이 유일하고, 올해 20년을 맞은 국내 프로농구에서도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뿐이다. 하지만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유 감독은 전자랜드 지휘봉을 잡고 나서 아직 감독으로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승을 하지 못한 감독이 한 팀을 10년 이상 맡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 하고, 축하해야 할 자리지만, 지난 21일 서울 강남에서 진행한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유 감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치과치료를 받고 왔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치르면서 이가 상한 것이다. 1시간 30여분 정도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약간 부은 왼쪽 볼을 주무르며 통증을 참았다. 유 감독은 “생각보다 손 본 곳이 많았다. 몇 년 전에는 반대쪽(오른쪽)도 싹 치료했는데, 뭐 내가 관리를 잘 못한 탓 아니겠냐”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승을 하지 못한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다”며 “이제는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다시 이를 악 물었다.
▲ 내 탓이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지난 8일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를 이끌고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바로 서울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올 시즌 정규리그 6위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3위 삼성과 뜨거운 대결을 펼쳤다. 1차전을 먼저 내준 전자랜드는 2, 3차전을 내리 잡으며 4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상대 삼성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 5차전까지 삼성과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던 전자랜드는 2승3패로 4강행 티켓을 아쉽게 내주고 말았다. 유 감독은 “결국 내 탓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또 다시 “내 탓이오”다. 유도훈 감독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사실 관리자 입장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 감독은 경기 후 결과에 대해 좋던, 나쁘던 자기 반성을 잘 하는 대표적인 지도자다.
정규리그 개막에 앞서 “이번에는 챔피언결정전에 꼭 진출하겠다”고 출사표를 밝혔던 유도훈 감독이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막판까지 창원 LG와 6위 경쟁을 펼치며 힘겹게 봄 농구 막차를 탔다. 유 감독은 “내가 외국인 선수를 잘 못 뽑아서 그런 것 아니겠냐. 제임스 켈리의 인사이드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계속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자랜드는 켈리를 시즌 중반 아이반 아스카로 교체했다가 다시 데려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꼴찌를 했던 지난 시즌(2015~2016)에도 안드레 스미스를 데려와 4경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결국 무릎 부상이 도져서 떠났다. 그 때도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인터뷰가 자아비판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유 감독에게 “사실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 감독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며 껄껄 웃었다. 기자의 질문을 우문(愚問)으로 만들어 버린 현답(賢答)이었다. 그는 “감독이 결정권자 아니냐. 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그가 선수들을 그냥 놔두는 것도 아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코트 위에서 유도훈 감독은 한 성질 하는 지도자다. 선수를 다그칠 때 목소리는 단호하고 눈빛은 매섭다. 그래서 레이저 눈빛을 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터치하지 않는다. 유 감독은 “선수들이 감독 눈치를 본다고 하는데, 사실 감독도 선수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감독 한 명 눈치를 봐야 하지만, 감독은 코트 위의 5명은 물론 벤치에 있는 선수까지 12명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경기를 졌을 때, 안 좋았을 때 끝나고 라커룸에서 질책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에 감독도 선수도 감정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후에는 선수들과 별 말 안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선수들은 열심히 잘 해줬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인데, 더 뛰라고 얘기하는 게 감독 입장에선 참 미안한 일이죠.” 다시 6강 얘기다.
전자랜드는 프로농구 대표적인 ‘언더독’ 구단이다. 전신인 대우 제우스-신세기 빅스-SK 빅스를 통틀어서도 아직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유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에는 2003-2004시즌 4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이후 KBL 최초의 2시즌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며 ‘만년 하위팀’ 이미지가 강했다. 경기력도 기대 이하의 장면이 많아 ‘개그랜드’라는 우스꽝스런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 부임 후 끈끈한 팀으로 변했다. 이름값 있는 선수는 없지만 조직력을 앞세웠다. 유 감독은 대행시절 포함 8시즌 동안 전자랜드를 6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이끌었고 그 중 3번은 4강까지 올려놨다. 이제 '반란'과 '돌풍'이 전자랜드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특히 2014~2015시즌에는 한때 최하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고 6강에서는 3위 SK를 3연승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해 ‘언더독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 장면은 프로농구 명승부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4강에서는 원주 동부와 5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아쉽게 2승3패로 물러서고 말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전자랜드의 끈질김을 많은 박수를 받았다.
173cm로 농구선수로는 작은 편인 유도훈 감독은 현역 시절 악바리로 유명했다. 이 같은 승부 근성은 지도자로서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고, 이는 전자랜드의 팀 컬러가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끈끈한 팀워크와 수비의 팀으로 변신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A급 선수가 아니라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기술도 개발해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멘탈이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최우선이 멘탈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그리고 이번까지 두 차례 재계약을 통해 이제 전자랜드 유도훈호는 시즌 3를 맞게 된다. 유 감독은 “이번에는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유 감독은 우승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다. 숭례초 5학년때 처음 농구에 입문해서 대방초로 전학을 간 이후 우승을 밥 먹듯이 했다. 용산고 3학년이던 1985년에는 주장을 맡으며 전관왕을 이끌기도 했다. 연세대 시절에도 4학년때 주장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 출범 후 대전 현대 시절에도 주장으로 2년 연속 우승을 함께했다. 코치로도 KCC에서 우승반지를 끼었다. 이제 농구인으로서 커리어에 감독 우승만 남아있다.
감독으로 장수인생에 접어든 그는 변화를 예고했다. “전자랜드에도 정통 빅맨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더 낫겠다”라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휴식기간이지만, 유 감독은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또 간판가드 박찬희(30)와의 FA계약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신인왕 강상재 프로젝트는 이미 돌입했다. 그는 “구단은 내가 하는 농구에 깊은 이해를 해줬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전자랜드에서 우승하는 것이 남은 소원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도훈
1967년 4월28일생
숭례초-대방초-용산중-용산고-연세대-현대전자(1989~1997)-대전 현대(1997~2000)
전주 KCC 코치(2001~2005)-창원 LG코치(2005~2007.1)-안양 KT&G 감독(2007.1~2008)-KBL 기술위원회 위원(2009.2~2009.4)-인천 전자랜드 코치(2009.4~2009.11)-인천 전자랜드 감독대행(2009.11~2010.3)-인천 전자랜드 감독(2010.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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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세계에서 감독은 흔히 ‘파리 목숨’ 취급을 받는다. 선수단의 실질적인 관리자이지만, 감독은 성적에 따라 자신의 목을 내놔야 하는 계약직인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 팀을 10년 이상 맡는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어느덧 36년째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해태(KIA의 전신) 김응용 감독(현 대한야구소프트볼회장)이 유일하고, 올해 20년을 맞은 국내 프로농구에서도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뿐이다. 하지만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유 감독은 전자랜드 지휘봉을 잡고 나서 아직 감독으로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승을 하지 못한 감독이 한 팀을 10년 이상 맡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 하고, 축하해야 할 자리지만, 지난 21일 서울 강남에서 진행한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유 감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치과치료를 받고 왔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치르면서 이가 상한 것이다. 1시간 30여분 정도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약간 부은 왼쪽 볼을 주무르며 통증을 참았다. 유 감독은 “생각보다 손 본 곳이 많았다. 몇 년 전에는 반대쪽(오른쪽)도 싹 치료했는데, 뭐 내가 관리를 잘 못한 탓 아니겠냐”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승을 하지 못한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다”며 “이제는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다시 이를 악 물었다.
▲ 내 탓이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지난 8일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를 이끌고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바로 서울 삼성과의 6강 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올 시즌 정규리그 6위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3위 삼성과 뜨거운 대결을 펼쳤다. 1차전을 먼저 내준 전자랜드는 2, 3차전을 내리 잡으며 4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상대 삼성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 5차전까지 삼성과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던 전자랜드는 2승3패로 4강행 티켓을 아쉽게 내주고 말았다. 유 감독은 “결국 내 탓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또 다시 “내 탓이오”다. 유도훈 감독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사실 관리자 입장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 감독은 경기 후 결과에 대해 좋던, 나쁘던 자기 반성을 잘 하는 대표적인 지도자다.
정규리그 개막에 앞서 “이번에는 챔피언결정전에 꼭 진출하겠다”고 출사표를 밝혔던 유도훈 감독이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막판까지 창원 LG와 6위 경쟁을 펼치며 힘겹게 봄 농구 막차를 탔다. 유 감독은 “내가 외국인 선수를 잘 못 뽑아서 그런 것 아니겠냐. 제임스 켈리의 인사이드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계속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자랜드는 켈리를 시즌 중반 아이반 아스카로 교체했다가 다시 데려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꼴찌를 했던 지난 시즌(2015~2016)에도 안드레 스미스를 데려와 4경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결국 무릎 부상이 도져서 떠났다. 그 때도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인터뷰가 자아비판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유 감독에게 “사실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 감독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며 껄껄 웃었다. 기자의 질문을 우문(愚問)으로 만들어 버린 현답(賢答)이었다. 그는 “감독이 결정권자 아니냐. 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그가 선수들을 그냥 놔두는 것도 아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코트 위에서 유도훈 감독은 한 성질 하는 지도자다. 선수를 다그칠 때 목소리는 단호하고 눈빛은 매섭다. 그래서 레이저 눈빛을 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터치하지 않는다. 유 감독은 “선수들이 감독 눈치를 본다고 하는데, 사실 감독도 선수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선수들은 감독 한 명 눈치를 봐야 하지만, 감독은 코트 위의 5명은 물론 벤치에 있는 선수까지 12명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경기를 졌을 때, 안 좋았을 때 끝나고 라커룸에서 질책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서로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에 감독도 선수도 감정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기 후에는 선수들과 별 말 안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선수들은 열심히 잘 해줬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인데, 더 뛰라고 얘기하는 게 감독 입장에선 참 미안한 일이죠.” 다시 6강 얘기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6-2017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인천 전자랜드 강상재가 신인상을 받고 유도훈 감독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다. 유도훈 감독은 강상재 신인상 수상을 위해 취재기자들에게 적극 어필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이제 강상재 2년차 프로젝트와 함께 더욱 강한 전자랜드
▲ 유도훈호 시즌3 “이제는 우승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전자랜드는 프로농구 대표적인 ‘언더독’ 구단이다. 전신인 대우 제우스-신세기 빅스-SK 빅스를 통틀어서도 아직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유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에는 2003-2004시즌 4강에 진출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이후 KBL 최초의 2시즌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며 ‘만년 하위팀’ 이미지가 강했다. 경기력도 기대 이하의 장면이 많아 ‘개그랜드’라는 우스꽝스런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 부임 후 끈끈한 팀으로 변했다. 이름값 있는 선수는 없지만 조직력을 앞세웠다. 유 감독은 대행시절 포함 8시즌 동안 전자랜드를 6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이끌었고 그 중 3번은 4강까지 올려놨다. 이제 '반란'과 '돌풍'이 전자랜드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특히 2014~2015시즌에는 한때 최하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고 6강에서는 3위 SK를 3연승으로 완파하고 4강에 진출해 ‘언더독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 장면은 프로농구 명승부 경기 중 하나로 꼽힌다. 4강에서는 원주 동부와 5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아쉽게 2승3패로 물러서고 말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전자랜드의 끈질김을 많은 박수를 받았다.
173cm로 농구선수로는 작은 편인 유도훈 감독은 현역 시절 악바리로 유명했다. 이 같은 승부 근성은 지도자로서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고, 이는 전자랜드의 팀 컬러가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끈끈한 팀워크와 수비의 팀으로 변신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A급 선수가 아니라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기술도 개발해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멘탈이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최우선이 멘탈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그리고 이번까지 두 차례 재계약을 통해 이제 전자랜드 유도훈호는 시즌 3를 맞게 된다. 유 감독은 “이번에는 꼭 우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유 감독은 우승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다. 숭례초 5학년때 처음 농구에 입문해서 대방초로 전학을 간 이후 우승을 밥 먹듯이 했다. 용산고 3학년이던 1985년에는 주장을 맡으며 전관왕을 이끌기도 했다. 연세대 시절에도 4학년때 주장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 출범 후 대전 현대 시절에도 주장으로 2년 연속 우승을 함께했다. 코치로도 KCC에서 우승반지를 끼었다. 이제 농구인으로서 커리어에 감독 우승만 남아있다.
감독으로 장수인생에 접어든 그는 변화를 예고했다. “전자랜드에도 정통 빅맨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더 낫겠다”라는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좀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휴식기간이지만, 유 감독은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또 간판가드 박찬희(30)와의 FA계약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신인왕 강상재 프로젝트는 이미 돌입했다. 그는 “구단은 내가 하는 농구에 깊은 이해를 해줬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전자랜드에서 우승하는 것이 남은 소원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도훈
1967년 4월28일생
숭례초-대방초-용산중-용산고-연세대-현대전자(1989~1997)-대전 현대(1997~2000)
전주 KCC 코치(2001~2005)-창원 LG코치(2005~2007.1)-안양 KT&G 감독(2007.1~2008)-KBL 기술위원회 위원(2009.2~2009.4)-인천 전자랜드 코치(2009.4~2009.11)-인천 전자랜드 감독대행(2009.11~2010.3)-인천 전자랜드 감독(2010.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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