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지난해까지 프로 스무시즌을 꽉 채웠다. KBO 투수 통산 최다 경기 출전(901경기)의 기록을 남기고 조용히 현역 마운드를 내려왔다.
LG 류택현 투수코치(44)는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의 불펜이다. LG의 ‘앞으로의 10년’이라는 좌완 임지섭(20)을 키우고 지키고 있다.
“띠동갑 후배들 볼 때까진 살아남자고 했죠.”
프로라는 정글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선수 생활의 목표는 그랬다. 그러나 십이간지의 두바퀴를 돌아 기어이 스물네살 터울 후배까지 보고 은퇴했다. 목표를 곱절로 넘어섰는데도 아쉬운 눈빛이다.
“기록을 세우다 보니깐, 솔직히 950경기 등판 욕심이 있었습니다.”
어디 갈 때와 나올 때도 마음이 다르다는데, 선수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마음이 꼭 같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차피 품을 꿈, 1000경기도 아니고 왜 950경기?
“스타가 아니었던 것이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던 비결이 돼줬던 것 같습니다. 늘 더 노력하고 더 긴장해야 했죠. 스타들에겐 어느 정도 자리가 보장되지만, 제 자리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어요.”
그는 그렇게 조금 모자란 것의 가치를 안다. 조금 모자랐던 자리여서 멈추지 않았다. ‘전문 불펜’ 투수로 버티면서 조금 아쉬웠던 보상과 조금 섭섭했던 조명까지 결국은 그를 가장 많은 마운드에 오르게 하는 힘이 됐다. 다 채우지 않는 숫자, 950경기까지 가고 싶었던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됐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기본이죠. 항상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남들보다 많이 했다고 자신하는 게 스트레칭입니다.”
장수비결을 물었던 사람들에게 류코치는 항상 가장 평범한 자기관리법을 얘기했다. 그러나 세세하게 따져 들어보면, 그리 단순한 얘기는 아니다. 선수 시절 내내 몸에 좋다는 것을 계절마다 꼼꼼히 챙겨먹었다. 튀김류나 인스턴트 음식은 피했다. 규칙적인 숙면을 위해 룸메이트도 가렸다. 주로 ‘잠보’ 후배들을 택했다.
“나보다 먼저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후배들이랑 방을 썼죠. 코를 골지 않는 친구들 중에서...”
그러니까 잠을 푹 재우는 좋은 방장이었다는 얘기. 예민한 잠귀에도 일정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5월 양상문 감독의 권유를 받고 LG의 ‘10년대계’인 ‘임지섭 키우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년 미들맨의 운명이 줄곧 그러했듯이, 결국 그가 마운드를 내려올 때를 온전히 스스로 정하지는 못했던 셈이다.
류택현에게 임지섭이란 20년 선수 생활을 끝내게 한 야속함이었고, 동시에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준 설렘이었다.
“단순히 150km를 던지는 빠른 볼 투수가 아니었습니다. 구속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공이었어요.”
악착같이 내 자리를 만들고 싶었던 근성 대신, 누군가를 키워볼 욕심이 생겼다. 올해만 생각하면 아쉬운 은퇴, 그러나 야구장에 남아있을 앞으로의 더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출발이다.
“(임)지섭이가 운이 좋은 선수죠. 이렇게 특별한 육성을 결심할 감독님을 만났고, 그 자리를 마침 맡을 수 있는 제가 있었으니... 서로 감사할 인연입니다.”
그는 KBO에 홀드기록이 생긴 2000시즌 이후 8차례나 홀드 10걸을 지킨 리그의 대표적인 왼손 셋업맨이었다. 마지막 랭크 인은 2013시즌의 5위(16홀드).
리그는 지금 불펜싸움이다. 계투조 운영은 각팀 벤치들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필승조의 셋업맨은 어느 팀에게나 ‘완전 소중한’ 자산. 팬들은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 못지않게 셋업맨들의 연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류코치는 여전히 불펜 투수에 대한 평가와 대우는 박한 편이라고 아쉬워한다.
“시즌의 화두는 불펜이죠. 그런데 스토브리그에선 다들 쳐다보지 않습니다. 후배들이 좀 더 세심하게 평가받고 자신의 자리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손으로 승부를 끝낼 수 있는 위닝샷이 있었던 투수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독신주의는 아니라는데...
“몇 번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쩐지 결말이 잘 나지 않았다”고 갸웃한다. ‘투수 류택현’은 갖고 있었던 위닝샷이 ‘총각 류택현’에겐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제 치열했던 선수 생활이 끝났으니 기대해볼 만할까.
“선수들 보다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갑니다. 선수 때 보다 더 바빠졌어요.”
901번의 마운드, 20시즌의 선수 생활을 넘어 그렇게 야구는 계속된다.
[chicleo@maekyung.com]
LG 류택현 투수코치(44)는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의 불펜이다. LG의 ‘앞으로의 10년’이라는 좌완 임지섭(20)을 키우고 지키고 있다.
“띠동갑 후배들 볼 때까진 살아남자고 했죠.”
프로라는 정글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선수 생활의 목표는 그랬다. 그러나 십이간지의 두바퀴를 돌아 기어이 스물네살 터울 후배까지 보고 은퇴했다. 목표를 곱절로 넘어섰는데도 아쉬운 눈빛이다.
“기록을 세우다 보니깐, 솔직히 950경기 등판 욕심이 있었습니다.”
어디 갈 때와 나올 때도 마음이 다르다는데, 선수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마음이 꼭 같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차피 품을 꿈, 1000경기도 아니고 왜 950경기?
“스타가 아니었던 것이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던 비결이 돼줬던 것 같습니다. 늘 더 노력하고 더 긴장해야 했죠. 스타들에겐 어느 정도 자리가 보장되지만, 제 자리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어요.”
그는 그렇게 조금 모자란 것의 가치를 안다. 조금 모자랐던 자리여서 멈추지 않았다. ‘전문 불펜’ 투수로 버티면서 조금 아쉬웠던 보상과 조금 섭섭했던 조명까지 결국은 그를 가장 많은 마운드에 오르게 하는 힘이 됐다. 다 채우지 않는 숫자, 950경기까지 가고 싶었던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됐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기본이죠. 항상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남들보다 많이 했다고 자신하는 게 스트레칭입니다.”
장수비결을 물었던 사람들에게 류코치는 항상 가장 평범한 자기관리법을 얘기했다. 그러나 세세하게 따져 들어보면, 그리 단순한 얘기는 아니다. 선수 시절 내내 몸에 좋다는 것을 계절마다 꼼꼼히 챙겨먹었다. 튀김류나 인스턴트 음식은 피했다. 규칙적인 숙면을 위해 룸메이트도 가렸다. 주로 ‘잠보’ 후배들을 택했다.
“나보다 먼저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후배들이랑 방을 썼죠. 코를 골지 않는 친구들 중에서...”
그러니까 잠을 푹 재우는 좋은 방장이었다는 얘기. 예민한 잠귀에도 일정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5월 양상문 감독의 권유를 받고 LG의 ‘10년대계’인 ‘임지섭 키우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년 미들맨의 운명이 줄곧 그러했듯이, 결국 그가 마운드를 내려올 때를 온전히 스스로 정하지는 못했던 셈이다.
류택현에게 임지섭이란 20년 선수 생활을 끝내게 한 야속함이었고, 동시에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준 설렘이었다.
“단순히 150km를 던지는 빠른 볼 투수가 아니었습니다. 구속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공이었어요.”
악착같이 내 자리를 만들고 싶었던 근성 대신, 누군가를 키워볼 욕심이 생겼다. 올해만 생각하면 아쉬운 은퇴, 그러나 야구장에 남아있을 앞으로의 더 많은 날들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출발이다.
“(임)지섭이가 운이 좋은 선수죠. 이렇게 특별한 육성을 결심할 감독님을 만났고, 그 자리를 마침 맡을 수 있는 제가 있었으니... 서로 감사할 인연입니다.”
그는 KBO에 홀드기록이 생긴 2000시즌 이후 8차례나 홀드 10걸을 지킨 리그의 대표적인 왼손 셋업맨이었다. 마지막 랭크 인은 2013시즌의 5위(16홀드).
리그는 지금 불펜싸움이다. 계투조 운영은 각팀 벤치들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필승조의 셋업맨은 어느 팀에게나 ‘완전 소중한’ 자산. 팬들은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 못지않게 셋업맨들의 연투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류코치는 여전히 불펜 투수에 대한 평가와 대우는 박한 편이라고 아쉬워한다.
“시즌의 화두는 불펜이죠. 그런데 스토브리그에선 다들 쳐다보지 않습니다. 후배들이 좀 더 세심하게 평가받고 자신의 자리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LG 류택현 투수코치가 잠실구장에서 경기전 타자들의 배팅볼 훈련을 돕고 있다. 사진(잠실)=옥영화 기자
20시즌 동안 남긴 스탯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숫자를 물었다. 이닝 당 탈삼진이라고 한다. 614⅔이닝동안 536개를 잡았다. 이닝 당 0.872개의 탈삼진이다. 선발 투수들의 숫자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좋은 수치다.“내 손으로 승부를 끝낼 수 있는 위닝샷이 있었던 투수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독신주의는 아니라는데...
“몇 번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쩐지 결말이 잘 나지 않았다”고 갸웃한다. ‘투수 류택현’은 갖고 있었던 위닝샷이 ‘총각 류택현’에겐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제 치열했던 선수 생활이 끝났으니 기대해볼 만할까.
“선수들 보다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갑니다. 선수 때 보다 더 바빠졌어요.”
901번의 마운드, 20시즌의 선수 생활을 넘어 그렇게 야구는 계속된다.
[chicleo@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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