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흔히 야구는 인생에 비유된다. 야구도 인생도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도 생겼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 역전의 드라마가 야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배영수(33‧삼성 라이온즈)가 꼭 오버랩 된다. 그런 굴곡진 야구인생을 살았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그가 프로야구 개인 통산 120승을 달성했다. 역대 12명밖에 이뤄내지 못한 대기록이다. 현역 선수 중엔 유일하다. 4전5기 끝에 올라선 120승.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우습다. 배영수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하면 누군들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배영수는 지난 25일 대구 홈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120승을 찍는 순간도 극적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9이닝 완투승(5피안타 7탈삼진 3실점)을 거뒀다. 참 묘하다. 120구로 120승을 찍었다. 2005년 4월2일 대구 롯데전 완봉승 이후 무려 9년, 3371일 만에 이룬 완투승이었다.
배영수는 지난 21일 롯데전에서 119승을 거둔 뒤 120승을 눈앞에서 4차례나 놓쳤다. 4경기 모두 승리요건을 갖추고도 믿었던 마무리 임창용이 무너졌다. 얄궂게도 임창용의 블론세이브 5개 중 4개가 배영수 등판 경기서 나왔다. 결국 배영수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지켜 120승 고지를 밟았다.
배영수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일각에 불과하다.
배영수는 2000년 삼성에 입단해 2년차 시즌에 13승8패 평균자책점 3.77로 우뚝 섰다. 2003(13승)-2004(17승)-2005(11승)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에는 다승왕과 MVP, 골든글러브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5, 2006년에는 삼성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끌며 통산 68승을 쓸어담았다.
거침없던 배영수의 야구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그해 1월 오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상태는 심각했다. 직구 스피드는 10㎞나 뚝 떨어졌다. 재기가 쉽지 않았다. 한 해를 통째로 날린 뒤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2009년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견디기 힘든 추락이었다. 은퇴도 고민했다. 그러나 배영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재기를 선택했다. 강속구 딱지를 내려놓고 제구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상대 타자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배영수는 기적처럼 부활했다. 2010, 2011년 6승씩 거두며 시동을 건 뒤 2012년 12승으로 7년 만에 두 자릿수 승수를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14승으로 무려 9년 만에 두 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올해 변함없이 마운드에 올라 120승의 감격을 마음껏 누렸다. 배영수는 올 시즌 7승을 더 보태면 프로야구 역대 다승 6위에 이름을 올린다. 김상진(122승‧10위) 김시진 정민태(이상 124승‧8위) 조계현 김용수(이상 126승‧6위)를 넘어서는 대기록이다.
배영수의 ‘푸른 피’는 뜨거웠다. 통산 382경기에 등판해 1780⅓이닝 동안 7713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이룬 감동의 역작이었다.
[min@maekyung.com]
배영수(33‧삼성 라이온즈)가 꼭 오버랩 된다. 그런 굴곡진 야구인생을 살았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 그가 프로야구 개인 통산 120승을 달성했다. 역대 12명밖에 이뤄내지 못한 대기록이다. 현역 선수 중엔 유일하다. 4전5기 끝에 올라선 120승.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우습다. 배영수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하면 누군들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배영수는 지난 25일 대구 홈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120승을 찍는 순간도 극적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9이닝 완투승(5피안타 7탈삼진 3실점)을 거뒀다. 참 묘하다. 120구로 120승을 찍었다. 2005년 4월2일 대구 롯데전 완봉승 이후 무려 9년, 3371일 만에 이룬 완투승이었다.
배영수는 지난 21일 롯데전에서 119승을 거둔 뒤 120승을 눈앞에서 4차례나 놓쳤다. 4경기 모두 승리요건을 갖추고도 믿었던 마무리 임창용이 무너졌다. 얄궂게도 임창용의 블론세이브 5개 중 4개가 배영수 등판 경기서 나왔다. 결국 배영수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지켜 120승 고지를 밟았다.
배영수의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일각에 불과하다.
배영수는 2000년 삼성에 입단해 2년차 시즌에 13승8패 평균자책점 3.77로 우뚝 섰다. 2003(13승)-2004(17승)-2005(11승)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에는 다승왕과 MVP, 골든글러브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5, 2006년에는 삼성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끌며 통산 68승을 쓸어담았다.
거침없던 배영수의 야구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그해 1월 오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상태는 심각했다. 직구 스피드는 10㎞나 뚝 떨어졌다. 재기가 쉽지 않았다. 한 해를 통째로 날린 뒤 내리막을 걷기 시작해 2009년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견디기 힘든 추락이었다. 은퇴도 고민했다. 그러나 배영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재기를 선택했다. 강속구 딱지를 내려놓고 제구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상대 타자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배영수는 기적처럼 부활했다. 2010, 2011년 6승씩 거두며 시동을 건 뒤 2012년 12승으로 7년 만에 두 자릿수 승수를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14승으로 무려 9년 만에 두 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올해 변함없이 마운드에 올라 120승의 감격을 마음껏 누렸다. 배영수는 올 시즌 7승을 더 보태면 프로야구 역대 다승 6위에 이름을 올린다. 김상진(122승‧10위) 김시진 정민태(이상 124승‧8위) 조계현 김용수(이상 126승‧6위)를 넘어서는 대기록이다.
배영수의 ‘푸른 피’는 뜨거웠다. 통산 382경기에 등판해 1780⅓이닝 동안 7713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이룬 감동의 역작이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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