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잠실벌을 울리는 영화 캐리비언 해적의 ‘He’s a pirate’.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37)의 등장음악이다. 김동주의 입장을 알리는 이 음악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상대팀에게 위압감을 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가 좋아 무조건 야구부에 가입한 김동주. (故) 최동원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운 김동주는 프로데뷔 3년 째 되던 2000년 5월 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잠실구장 최초로 장외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7차례 가슴에 태극기를 단 김동주는 4번 타자로서 팀의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김동주는 지난 2년 동안 1군 무대에 선 건 총 94경기. 지난해에는 28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5푼6리 1홈런 9타점에 그쳤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2군행 통보를 받았고 5월 17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1군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뜬소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김동주는 그의 심리를 자극하는 말에 귀를 막고 다시 잠실야구장에 설 날을 준비하고 있다.
▲ 잊지 못할 그 이름 ‘스승님’
김동주의 야구인생은 배명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991년에 시작됐다. 당시 배명중학교 3학년이던 김동주는 추계리그를 앞두고 갑작스런 부상을 당한 동료선수를 대신해 타석에 섰다. 얼떨결에 경기에 나선 김동주는 내친 김에 동대문운동장에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만루 홈런을 때렸다.
“지금의 ‘김동주라는 선수’는 (故) 정귀창 감독님께서 만들어주셨다”라고 말한 김동주는 “감독님은 나의 중·고등학교 감독님이셨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유독 예뻐해 주시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많이 혼났다. 다른 선수들은 혼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꼬집어 일부러 혼내셨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故) 정귀창 감독과 함께 했다. 김동주는 “감독님은 더 훈련을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스스로 운동하게끔 여건을 만들어준 것 같다. 이 훈련이 밑천이 돼 대학교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이 안 계셨으면 지금 이 자리에 나도 없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동주는 (故) 정귀창 감독을 ‘아버지’라 생각했다. “감독님 심부름을 많이 했다. 감독님 빨래도 내가 챙겼다. 내가 나쁜 길로 빠질까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동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야구부실 내 감독님 방에 빗물이 찬 적이 있었다. 새벽에 경기를 끝내고 와서 감독님과 속옷만 입고 물을 퍼낸 적도 있다”라며 웃었다.
1998년 김동주가 OB 베어스에 1차 지명됐다. 프로 첫 시범경기를 하고 있을 때 (故) 정귀창 감독은 하늘의 별이 됐다. 김동주는 “신인 신분이었기에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못 찾아뵌 것이 아직 가슴에 남는다. 그 분이 안 계셨으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나를 강하게 키워주신 분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동주는 “전반기가 끝날 무렵 정말 못 했다. 내가 생각해도 무조건 2군으로 내려가야 할 성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인식 전 감독은 김동주를 계속 4번 타자로 기용했다. 김동주는 “감독님은 나에게 ‘할 수 있다. 후반기에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며 응원해주셨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전했다.
주먹을 불끈 쥔 김동주는 다른 선수들보다 3~4시간 일찍 경기장에 나와 김평호 코치(삼성 라이온즈)와 개인 훈련을 했다. 김동주는 김인식 전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후반기에 결실을 맺었다.
2000년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도중 김동주는 최익성의 타구를 맞고 오른 중지가 부러졌다. 뼛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김동주는 마취주사를 맞고 다시 타석에 나섰다. 오로지 자신을 믿어준 김인식 전 감독 때문이었다.
당시 부상을 당한 오른 중지는 완전히 구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김동주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됐어도 단 한 번도 감독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야구하는 데 지장 없다”이라며 “믿음이다. 감독님이 무슨 말씀하셔도 분명 뜻이 있겠거니 하며 믿었다”라며 웃었다.
▲ 2군, 관심이 필요한 그 곳
김동주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이미지에 눌려 ‘무섭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몇몇 투수들은 “김동주 선배가 타석에 서면 순간 압박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동주는 “야구장에 가면 안 웃는다. 약해보이는 것이 싫어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료들과 있을 땐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이러한 성격에 최준석, 손시헌, 임태훈 등 다양한 연령대의 후배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2군으로 내려갔을 때 후배들은 김동주의 존재만으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동주에게 적응된 2군 선수들은 그의 따뜻함에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곳에 머무는 동안 김동주는 2군 선수들의 고충을 직접 보고 체험했다. “1군과 비교했을 때 2군은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음료수도 정량으로 나오기에 항상 갈증을 느낀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동주가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2년 동안 2군에 있으면서 야구를 그만 두고 나가는 후배들을 많이 봤다”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김동주는 “내가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귀에 안 들어올 것이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일주일 생활이 똑같다. 이런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고 괜히 잔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라며 한 숨 쉬었다.
김동주 역시 위기를 겪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6년 WBC 아시아 예선 도중 왼쪽 동그란 어깨뼈가 두 동강이 나 왼 팔꿈치까지 내려갔다. 김동주는 “누구한테 업혀 나가는 것이 정말 싫다. 걷는데 그라운드와 도쿄돔 천장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한 뒤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열심히 재활한 결과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지 않느냐”라며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김동주는 후배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야구용품을 후배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김동주는 “어렵게 야구를 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2군 선수들에 대한 선입견, 잘 보지 못했던 점에 대해 미안했다. 내가 야구를 그만 둔다면 그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 팬들을 위한 ‘두목곰’
지난 2시즌 동안 김동주에 대한 소문이 많았다. ‘몸이 안 좋다’, ‘운동을 게을리 한다’, ‘김진욱 전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등 수많은 뜬소문들이 김동주를 괴롭혔다.
김동주는 “사실 그렇지 않다. 2군에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또 김진욱 감독님과의 사이가 좋고 안 좋고가 어디 있느냐. 선수기용은 감독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뛰고 싶다고 해서 뛰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진욱 전 감독과의 사이에 대해 김동주는 “나를 왜 기용하지 않았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없다”라고 했다. 이어 김동주는 “그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워낙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기에 금방 잊어버렸다”라며 “계속 바뀌고 새로워지는 곳이 바로 프로 세계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해 김동주는 2군에 있으면서 송일수 퓨처스리그 감독(두산 베어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동주는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신경 쓰지 마라. 여기에서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다”라며 오해를 풀었다.
김동주의 올해 목표는 1군 합류다. 김동주는 송일수 신임 감독과 합의해 1군 스프링캠프지가 아닌 2군 캠프로 이동해 몸을 만들 계획이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인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김동주는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첫 마디는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내가 잘 했으면 이런 상황이 안 왔을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이제는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잘 만들어서 야구장에서 보여드릴 것”이라며 “변하지 않고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 팬들이 있었기에 좋게 마무리 하고 싶다. 팬들을 위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동주는 그의 별명 ‘두목곰’에 대해 “황송하다. 그에 걸맞은 야구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잠시 내려놓고 본 모습을 찾아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약속했다.
[gioia@maekyung.com]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가 좋아 무조건 야구부에 가입한 김동주. (故) 최동원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운 김동주는 프로데뷔 3년 째 되던 2000년 5월 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잠실구장 최초로 장외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7차례 가슴에 태극기를 단 김동주는 4번 타자로서 팀의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김동주는 지난 2년 동안 1군 무대에 선 건 총 94경기. 지난해에는 28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5푼6리 1홈런 9타점에 그쳤다. 결국 성적 부진으로 2군행 통보를 받았고 5월 17일 한화 이글스전 이후 1군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뜬소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김동주는 그의 심리를 자극하는 말에 귀를 막고 다시 잠실야구장에 설 날을 준비하고 있다.
▲ 잊지 못할 그 이름 ‘스승님’
김동주의 야구인생은 배명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1991년에 시작됐다. 당시 배명중학교 3학년이던 김동주는 추계리그를 앞두고 갑작스런 부상을 당한 동료선수를 대신해 타석에 섰다. 얼떨결에 경기에 나선 김동주는 내친 김에 동대문운동장에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만루 홈런을 때렸다.
“지금의 ‘김동주라는 선수’는 (故) 정귀창 감독님께서 만들어주셨다”라고 말한 김동주는 “감독님은 나의 중·고등학교 감독님이셨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유독 예뻐해 주시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많이 혼났다. 다른 선수들은 혼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꼬집어 일부러 혼내셨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종일 (故) 정귀창 감독과 함께 했다. 김동주는 “감독님은 더 훈련을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스스로 운동하게끔 여건을 만들어준 것 같다. 이 훈련이 밑천이 돼 대학교까지 무난하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이 안 계셨으면 지금 이 자리에 나도 없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동주는 (故) 정귀창 감독을 ‘아버지’라 생각했다. “감독님 심부름을 많이 했다. 감독님 빨래도 내가 챙겼다. 내가 나쁜 길로 빠질까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동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야구부실 내 감독님 방에 빗물이 찬 적이 있었다. 새벽에 경기를 끝내고 와서 감독님과 속옷만 입고 물을 퍼낸 적도 있다”라며 웃었다.
1998년 김동주가 OB 베어스에 1차 지명됐다. 프로 첫 시범경기를 하고 있을 때 (故) 정귀창 감독은 하늘의 별이 됐다. 김동주는 “신인 신분이었기에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 못 찾아뵌 것이 아직 가슴에 남는다. 그 분이 안 계셨으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나를 강하게 키워주신 분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동주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김인식 전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방망이를 들었다. 사진=한희재 기자
아마추어 야구의 스승이 (故) 정귀창 감독이었다면 프로에서의 스승은 김인식 전 감독(한국야구위원회 위원장)이라고 한다. 프로 입단 첫 해부터 관심과 기대를 받았던 김동주는 부담감으로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김동주는 “전반기가 끝날 무렵 정말 못 했다. 내가 생각해도 무조건 2군으로 내려가야 할 성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인식 전 감독은 김동주를 계속 4번 타자로 기용했다. 김동주는 “감독님은 나에게 ‘할 수 있다. 후반기에 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며 응원해주셨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전했다.
주먹을 불끈 쥔 김동주는 다른 선수들보다 3~4시간 일찍 경기장에 나와 김평호 코치(삼성 라이온즈)와 개인 훈련을 했다. 김동주는 김인식 전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후반기에 결실을 맺었다.
2000년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도중 김동주는 최익성의 타구를 맞고 오른 중지가 부러졌다. 뼛조각이 떨어져 나갔지만 김동주는 마취주사를 맞고 다시 타석에 나섰다. 오로지 자신을 믿어준 김인식 전 감독 때문이었다.
당시 부상을 당한 오른 중지는 완전히 구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김동주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됐어도 단 한 번도 감독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야구하는 데 지장 없다”이라며 “믿음이다. 감독님이 무슨 말씀하셔도 분명 뜻이 있겠거니 하며 믿었다”라며 웃었다.
김동주는 2군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한희재 기자
▲ 2군, 관심이 필요한 그 곳
김동주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이미지에 눌려 ‘무섭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몇몇 투수들은 “김동주 선배가 타석에 서면 순간 압박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동주는 “야구장에 가면 안 웃는다. 약해보이는 것이 싫어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료들과 있을 땐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이러한 성격에 최준석, 손시헌, 임태훈 등 다양한 연령대의 후배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2군으로 내려갔을 때 후배들은 김동주의 존재만으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동주에게 적응된 2군 선수들은 그의 따뜻함에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곳에 머무는 동안 김동주는 2군 선수들의 고충을 직접 보고 체험했다. “1군과 비교했을 때 2군은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를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음료수도 정량으로 나오기에 항상 갈증을 느낀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동주가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2년 동안 2군에 있으면서 야구를 그만 두고 나가는 후배들을 많이 봤다”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김동주는 “내가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귀에 안 들어올 것이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일주일 생활이 똑같다. 이런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고 괜히 잔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라며 한 숨 쉬었다.
김동주 역시 위기를 겪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6년 WBC 아시아 예선 도중 왼쪽 동그란 어깨뼈가 두 동강이 나 왼 팔꿈치까지 내려갔다. 김동주는 “누구한테 업혀 나가는 것이 정말 싫다. 걷는데 그라운드와 도쿄돔 천장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한 뒤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열심히 재활한 결과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지 않느냐”라며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김동주는 후배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야구용품을 후배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김동주는 “어렵게 야구를 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2군 선수들에 대한 선입견, 잘 보지 못했던 점에 대해 미안했다. 내가 야구를 그만 둔다면 그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김동주는 변함 없는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2014시즌 "두목곰"의 부활을 노린다. 사진=한희재 기자
▲ 팬들을 위한 ‘두목곰’
지난 2시즌 동안 김동주에 대한 소문이 많았다. ‘몸이 안 좋다’, ‘운동을 게을리 한다’, ‘김진욱 전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등 수많은 뜬소문들이 김동주를 괴롭혔다.
김동주는 “사실 그렇지 않다. 2군에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또 김진욱 감독님과의 사이가 좋고 안 좋고가 어디 있느냐. 선수기용은 감독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뛰고 싶다고 해서 뛰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진욱 전 감독과의 사이에 대해 김동주는 “나를 왜 기용하지 않았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없다”라고 했다. 이어 김동주는 “그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워낙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기에 금방 잊어버렸다”라며 “계속 바뀌고 새로워지는 곳이 바로 프로 세계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해 김동주는 2군에 있으면서 송일수 퓨처스리그 감독(두산 베어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동주는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신경 쓰지 마라. 여기에서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다”라며 오해를 풀었다.
김동주의 올해 목표는 1군 합류다. 김동주는 송일수 신임 감독과 합의해 1군 스프링캠프지가 아닌 2군 캠프로 이동해 몸을 만들 계획이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인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김동주는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첫 마디는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내가 잘 했으면 이런 상황이 안 왔을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이제는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잘 만들어서 야구장에서 보여드릴 것”이라며 “변하지 않고 항상 응원해주는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 팬들이 있었기에 좋게 마무리 하고 싶다. 팬들을 위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동주는 그의 별명 ‘두목곰’에 대해 “황송하다. 그에 걸맞은 야구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잠시 내려놓고 본 모습을 찾아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약속했다.
[gioia@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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