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기우였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괜스레 준비도 안 된 팀들이 1부로 올라와서 판을 흐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접어도 되겠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이 충분하다는 것을 FC안양이 보여줬다.
10년 만에 부활한 ‘지지대 더비’로 관심을 모았던 FC안양과 수원삼성의 FA컵 32강 경기가 날이 바뀌고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되고 있다. 가뜩이나 지켜보는 시선이 많았던 경기인데 88분을 FC안양이 리드했다가 추가시간을 포함해 종료 막바지 자책골과 결승골을 허용해 수원이 2-1 역전승을 거둔 극적인 내용이 합쳐지면서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일단 경기력이 좋았다. 비록 수원이 젊은 선수들 위주의 1.5군을 꾸렸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으나 FC안양의 플레이는 K리그 클래식에서도 강호로 꼽히는 수원과 당당히 견줄 수준이었다. 후반 들어 서정원 감독이 서정진과 오장은 등 주축 멤버를 급히 투입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경험부족과 체력 및 집중력 저하 그리고 아쉬운 실수들이 합쳐지면서 뒷심부족으로 다 잡은 경기를 놓쳤지만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경기였다. 간접적으로 K리그 챌린지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기도 했다.
현재 FC안양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승점 6점(1승2무3패) 획득에 그치며 K리그 챌린지 7위에 머물고 있다. 참가 8팀 중 끝에서 두 번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리그 강호를 혼쭐냈다. 만남의 특수성과 맞물린 플러스알파의 힘을 감안해야겠으나, 어쨌든 K리그 챌린지의 경쟁력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경기를 준비한 이들의 노력도 박수 받을 일이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1만1724명의 관중이 모였다. 특별한 경기였으나 그래도 대단한 수치였다.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을 통제한 것이 처음이었을 구단이지만 전체적으로 딱히 흠 잡을 것 없었다. 그만큼 준비를 잘했다는 방증이다.
경기장을 빙 둘러싼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은 몰려오는 보행자와 차량들을 일일이 챙기며 원활한 입장을 도왔다. 경기장 내부 곳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팬들은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불편함 없이 잔치를 즐길 수 있었다. 안내 요원들의 숫자나 자세는 K리그 클래식 구단들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 팀들의 준비와 견줄 정도였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팬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관람 문화였다. 10년의 기다림 뒤에 만난 라이벌과의 경기가 88분 동안 앞서다 막판에 틀어졌으니 감정 제어가 쉽지 않았을 상황이다. 하지만 일반 팬들도 서포터들도 끝까지 이성적이었다. 선수들은 복받친 감정에 눈물을 쏟아냈으나 외려 팬들은 되찾은 오늘과 다가올 내일에 대한 기쁨에 목청껏 응원구호만 쏟아냈을 뿐이다.
선수들과의 유대감 역시 1부 클럽 부럽지 않았다. 이날 경기 후 운동장에서 빠져나와 구단 버스로 이동하는 구간은 팬들로 긴 줄이 형성됐다. 그 사이를 통과하는 FC안양 선수들은 그 어떤 연예인보다 빛나는 스타였다. 이런 그림이 2부리그 클럽에서 나왔다는 게 더 흐뭇했다.
비록 결과는 아쉬웠으나 많은 부분에서 진한 여운을 남긴 FC안양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될 모습들이 적잖았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그럴만한 깜냥이 될까 곱지 않은 시선들을 앞세워 걱정하던 시선들을 향해 아주 깔끔하고 당당하게 외친 FC안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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