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 있던 810호 객실문…호텔직원은 투숙객들 대피 못 시켜
투숙객 7명이 숨진 경기 부천 호텔 화재 당시 객실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구조적인 원인으로 피해가 커졌지만,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없진 않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늘(28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원미구 호텔 7층 객실에서 발생한 불은 에어컨 누전 등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소방 당국은 객실 810호(7층) 에어컨에서 전기불꽃(아크)이 떨어져 소파와 침대 매트리스에 옮겨 붙은 뒤 객실 전체가 폭발적 화염에 휩싸이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불로 투숙객 7명이 숨지고 중상자 2명을 포함해 12명이 다쳤습니다. 불길이 호텔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았는데도 내부에서 유독가스가 빠르게 퍼진 데다 객실에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아 피해가 컸습니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구조적인 원인으로 이번 화재 피해가 커졌지만, 불이 난 직후 사망자를 줄일 기회는 적어도 2차례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우선 발화지점인 810호의 객실문이 열려 있지 않고 닫힌 상태였다면 인명피해는 상당히 줄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애초 810호에 배정받은 투숙객 A씨는 화재 당일 오후 7시 31분 입실했다가 3분 만에 나왔습니다.
A씨는 "에어컨 쪽에서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탄 냄새가 난다"며 호텔 직원에게 객실 변경을 요청해 결국 아래층 710호로 객실을 재배정받았습니다.
A씨는 그러나 810호를 떠나는 과정에서 문을 닫지 않고 나왔습니다.
원래 이 호텔 객실문은 2004년 준공 당시에는 방화문으로도 시공됐기 때문에 문이 자동으로 닫혀야 하지만 열린 채 방치됐습니다. 객실 문에 설치돼 있어야 할 자동 닫힘 장치 '도어클로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폐쇄회로(CC)TV 상으로 오후 7시 37분 7초부터 810호에서 연기가 분출하기 시작하더니 불과 83초 만에 7층 복도 전체가 유독가스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 따르면 방화문은 방화 기능을 하기 위해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로 인한 연기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합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호텔 객실에서 연기가 나 복도로 대피할 때는 항상 문을 닫고 나와야 한다"며 "810호 객실 문이 닫혔더라면 연기와 유독가스가 복도로 빠르게 퍼지지 않아 사망자가 없는 화재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부천 호텔 화재 진행 상황. / 사진=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제공
또 다른 아쉬운 순간은 호텔 매니저 B씨가 "810호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는 A씨의 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7층으로 올라갔을 때입니다.
조사 결과 B씨는 7층에 올라가 복도에 퍼진 연기를 확인하고는 비교적 신속하게 119에 신고는 했지만, 같은 층 투숙객들을 적극적으로 대피시키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화재 전문가는 "처음에 A씨가 방을 바꾸기 전에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으면 호텔 측 소방 관리자나 다른 직원 누군가가 소화기부터 들고 그 객실에 갔어야 했다"며 "전기불꽃 정도는 20초면 소화기로 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초 신고자이기도 한 B씨가 대피 전에 7층 다른 객실문을 두드려 화재 사실을 알렸다면 인명피해가 더 줄었을 것"이라며 "시간이 충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초기 대응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일단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B씨를 형사 입건했으며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입니다.
경찰은 호텔 관계자들이 화재 초기에 적절하게 대응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B씨가 다른 투숙객을 대피시키지 못한 행위를 실제로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수사기관 출신 한 변호사는 "B씨가 호텔 7층에 도착한 시간 등 당시 여러 정황을 경찰이 확인할 것"이라며 "다른 투숙객을 대피시킬 시간이 촉박했다고 판단되면 초기대응이 아쉽더라도 형사 처벌을 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조수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uyeonjoma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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