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가해자 우선주의 판결 언제까지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는 롤리타였다" - 소설 '롤리타' 중

중년 남자가 '열두 살 소녀에게 반했다'고 합니다. 소녀 옆에 머물기 위해 남편을 잃은 소녀의 엄마와 결혼까지 하죠.

남자의 속셈을 알게 된 소녀의 엄마는 충격으로 죽고, 남자는 의붓딸인 소녀를 연인처럼 대하며 함께 전국을 떠돕니다.

1955년 출간된 소설 '롤리타' 이야기인데, 실제 법과 윤리적 기준으로 보면 이 남성은 미성년 대상 '성범죄자'지요.

"미성년자랑 성매매한 그 더러운 XX(새끼)는 처벌 안 받는데요." - 영화 '모범생' (2017)

10대 성매매를 고발한 영화입니다. 실제는 어떨까요.

강릉에서 성인 남성 6명이 채팅으로 알게 된 초등학교 여학생 2명에게 현금과 게임기 등을 준 뒤 수차례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들 중엔 공무원과 사범대 학생도 있었죠. 그런데, 이 중 감옥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춘천지법이 성매매를 제안한 1명에게는 벌금 천만 원을, 나머지 5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거든요. "피해자 1명과는 합의를 했고,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니"라면서요.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만 13세 미만의 아동과 성관계를 갖는 건 '의제 강간죄'에 해당하죠?

심지어 합의하지 않은 나머지 피해 아동이 강력한 처벌을 원했음에도 초범에, 공탁금을 많이 걸었다며 저런 형을 내린 겁니다.

이제 초범에, 돈 좀 있으면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된 거죠. 한마디로 합당한 처벌로 경각심을 줘야 할 법원이 범죄에 정당성을 준 겁니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는 매일 11건꼴로 발생하고 있지만, 재작년 1심이 선고된 사건 중 징역형은 28%뿐이었습니다. 44%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1%는 벌금으로 끝났죠.

미국은 성행위 목적으로 아동에게 선물이나 돈을 주면 10년 이상 중형에, 영국은 성적 접촉 행위로 나아가기 전 단계인 그루밍(길들이기) 행위만으로도 범죄라며 처벌합니다.

성범죄에 노출됐던 아동의 뇌는 정상인보다 15% 작고, 특히 기억과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 손상이 크다고 하죠. 그만큼 정신적, 신체적으로 평생 고통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가해자 인생도 감안해야 한다"고요? 그럼 나쁜 어른들의 꼬임에 희생된 아이들의 인생은요?

재판장님은 본인 자녀의 일이라도 그렇게 처벌하시겠습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가해자 우선주의 판결 언제까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