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에서 '누군가 고의로 밀어서 사고가 났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경찰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31일 "이태원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까지 부상자·목격자·이태원 사고 골목길 인근 상인과 종업원 등 총 44명을 조사했다"며 "이제 막 수사가 본격화하는 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154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골목길 인근 CCTV 52대를 확보해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남 본부장은 "현재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475명의 인력을 투입해 사건을 분석하고 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까지 파악해 정밀하게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수사 초기단계인 만큼 현재까지 범죄 혐의가 발견돼 입건된 인물은 없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밀어"를 외쳐 혼란을 야기한 인물들과 압사사고 와중에 건물을 걸어 잠근 상인들까지 전부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SNS에는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어"를 외치며 힘껏 미는 모습의 영상이 공개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희중 경찰청 형사국장은 "조사 이후 결과에 따라서 (사법) 처리할 것"이라면서 "현장 목격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상황이 되면 강제수사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한 명의 사망자를 특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망자 시신의 지문이 등록이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17세 이하이거나,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입국자일 가능성이 있다"며 "각국 대사관에도 신원 확인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고 직전 경찰의 안일한 대응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용산경찰서는 지난 27일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200명의 경찰 인력을 투입한다고 홍보했지만, 사고 당일 29일에 현장 근무한 인원은 137명에 불과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관할 기관인 용산경찰서에 확인해보니, 핼러윈 축제기간인 3일동안 총 동원되는 인력이 200명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고 해명해 논란이 일었다. 실질적인 치안·질서 유지보다는 홍보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홍 국장은 "10만명이라는 인원이 이태원이라는 넓은 지역에 모였지만,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더 많이 모였다든가 하는 등의 특이 사항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장 판단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차도 개방'에 대해서도 경찰은 "이달 이태원에서 열린 지구촌 축제는 주최측이 명확해 역할 분담이 잘 이뤄져 차도를 막고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면서 "핼러윈 축제는 주최측 없이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즐기는 행사라 다른 행사와 차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압사사고로 인해 주최자 없는 대규모 행사의 경우에도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재발방지책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홍 경비국장은 "이번 사안과 같은 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메뉴얼을 세세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관련 기관들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압사사고로 인한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이태원 가스폭발', '사망자 신원' 등 허위사실 유포에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남 본부장은 "조속한 쾌유와 일상회복을 기원하며 경찰도 개인정보 유포와 명예훼손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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