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어업활동을 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입니다. 죽은 정어리들을 하루종일 깨끗하게 치워도 다음날이면 다시 하얗게 바다를 뒤덮고 있습니다."
14일 오후 2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양환경공단 마산지사 앞바다. 멀리서 보면 하얀 스티로폼이 바다에 쫙 갈린 듯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죽은채 허연 배를 까뒤집은 정어리떼들이다.
이날 공무원과 어민들은 지난달 30일부터 죽은 정어리들을 수거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만 수거한 정어리 폐사체는 8.7t이다. 지난 2주간 마산 앞바다에 죽은 정어리떼를 수거한 양만 180여t이 넘는다. 개체수를 정확히 알순 없지만 무게에 비춰 이날까지 대략 1000만 마리가 넘게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거작업을 도우러 나온 이용진 용마산어촌계장은 "수거 작업에 10일넘게 참여하고 있지만 이렇게 매일매일 수거해도 나오는 건 난생 처음이다. 꿈에도 정어리가 나온다"며 "특히 악취가 워낙 심해 작업을 마치고 씻고 가도 사람들이 쳐다보면 피할 정도"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양환경공단 마산지사 앞바다에서 어민들과 공무원들이 죽은 정어리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창원시]
마산 해양신도시 인근 앞바다 곳곳에서 정어리 폐사체가 2주 동안 연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양드라마세트장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정어리 떼가 죽은 채 발견된 이후 인근 도만항과 다구항, 마산인공섬, 3·15해양누리공원 등 진동만과 마산만 연안 전역으로 퍼졌다.창원시는 폐사한 물고기로 인한 해양오염과 악취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까지 시청·구청 및 어업인 등 1000여명을 투입해 수거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매일 아침마다 죽은 채 올라오는 정어리떼를 수거하는 데 역부족이다. 특히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악취까지 발행해 인근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같은 악취 피해가 발생하면서 창원시는 애초 죽은 정어리떼를 비료공장으로 옮겼으나 최근에는 곧바로 소각장으로 보내 폐기처분을 하고 있다.
정어리 떼죽음 사태를 장기화 되면서 원인을 두고 추측도 난무한다. 일각에서는 지진이나 해일 등 큰 자연재해의 전조 현상이라는 괴담까지 나올 정도다.
우선 용존산소부족설이다. 이번에 발견된 정어리는 '몸통 길이 14~16㎝에 무게 20g 정도의 부화한 지 1년이 지난 성어'로 판별됐다. 이같은 대규모 정어리 어군이 마산 앞바다로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나가지 못해 산소가 부족해 폐사했다는 것이다. 정어리 폐사체가 발견되는 마산해양신도시 인근은 창원·고성·거제에 둘러싸인 진해만의 가장 안쪽 해역이다. 대규모 정어리떼가 진해만에 들어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중금속, 폐수 등 수질 오염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창원시 조사 결과 수질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빈산소수괴설도 나오고 있으나 발생 해역의 다른 어종이나 어패류도 폐사해야 하나 정어리만 죽은 채 발견돼 설명이 부족하다.
초기에는 어민들이 죽은 정어리를 다량으로 버렸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수산자원관리법은 몸통 길이가 20㎝ 이하인 청어를 잡지도 팔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정어리를 청어로 오인한 어민들이 통째로 버렸다는 것이다. 창원시도 이번 정어리 떼죽음 사태 초기에 죽은 물고기를 청어라고 발표하며 '정어리투기설'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보름째 죽은 정어리떼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일부 어민들은 거제 등지에서 대규모 정어리 어군이 들어오자 어선단이 수확량을 채우고 나머지 정어리를 다량으로 바다에 투기하면서 피로도가 쌓인 정어리들이 폐사해 마산 앞바다 쪽으로 흘러들어왔다고 보기도 한다.
국립 수산과학원은 이번 정어리떼 폐사에 대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현장에서 채취한 수질의 용존산소(물속에 녹아있는 분자 상태의 산소), 염분, 중금속, 폐수 농도, 수온, 질병 감염 등 다양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이르면 내주께 나올 예정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다량의 정어리떼 어군이 발견된 것도 40년만인데다 대규모 집단폐사는 국내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다"며 "현재 폐사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당분간 수거작업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어리떼가 대거 죽은 채 발견되면서 마산 앞바다에는 때아닌 갈치와 삼치가 모여들어 낚시꾼과 어선들은 즐거워 하고 있다.
한 낚시꾼은 "원전 등 마산 해역에 갈치와 삼치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하루 평균 50마리는 잡아가는 것 같다"며 "죽은 정어리떼 등 먹잇감이 생기다 보니 갈치들도 다량으로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창원 = 최승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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