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 누명을 쓰고 21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72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입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법적인 소송에 매달리고 있지만, 보상은 턱없이 적고 배상은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김동빈 부장판사)는 최근 강도살인 누명을 쓰고 복역한 피해자 장동익(64), 최인철(61) 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장씨에게 19억5000만원, 최씨에게 18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지씨와 최씨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함께 고통을 겪은 두 사람의 가족 14명에게도 1인당 4000만원에서 6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법원이 16명의 피해자들에게 인정한 배상금 총액은 72억여원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1년 10개월 뒤 경찰은 장씨와 최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두 사람은 검찰 수사 때부터 '경찰에게 고문당해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최씨의 처남은 최씨가 사건 당일 대구의 처가에 있었다고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몰려 구속됐고, 최씨의 배우자 역시 위증교사죄로 구속됐다.
21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끝에 장씨와 최씨는 2013년 모범수로 풀려났다. 대검찰청 과거사조사위는 2019년 이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다는 점을 밝혀냈고 두 사람은 부산고법을 청구했다. 재심끝에 지난해 2월 장씨와 최씨는 사건 발생 31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건 보상금과 배상금이다. 헌법 제28조에 규정된 '형사보상제도'에 따라 구금됐던 사람이 무죄를 받으면 국가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상은 '구금 당시' 최저일급의 최대 5배까지 이뤄지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최저일급과 비교하면 현재는 급격하게 물가 수준이 올랐고, 최대 5배까지 이뤄지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삼례 3인조'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국가와 수사검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되레 맞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삼례 3인조는 손해배상소송 1심과 2심에서 국가와 수사검사가 15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받았다. 그 과정에서 수사검사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물론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공익활동을 펼쳐온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국가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해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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