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1일 핼러윈데이가 한창이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시내에서 고릴라 탈을 쓰고 여성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입건된 외국인 남성 A씨가 이달 초 검찰에 송치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2일 서울 용산경찰서는 피의자 A씨를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지난 3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핼러윈데이 축제 당시 고릴라 탈을 쓰고 분장한 채 앞서가던 '바니걸' 복장의 여성 뒷모습을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피해 여성이 A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경찰이 정식 수사에 나섰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법촬영이 아닌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찰은 피의자 A씨가 소유한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결과 진술과 일치하는 시점에 영상통화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 경찰은 지난달 25일께 해당 기기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으나 불법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에 영상통화 기록은 남아있었으나 영상은 저장이 안돼있었다"며 "그밖에 증거는 없지만 본인이 촬영행위를 인정하고 있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A씨는 "피해자의 뒷모습 아래쪽을 비추면서 영상통화를 한 것은 맞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법조계는 피의자 진술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며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14조의 경우 처벌 대상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촬영물'에 해당하는 불법 촬영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분 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A씨가 불법 촬영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어 검찰 또한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만약 A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으면 재판부는 구체적 촬영물이 없어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대표변호사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를 촬영했느냐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촬영물을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며 "그게 없다고 하면 유죄판단이 어려워 무혐의나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불법 촬영이란 것은 촬영 기기의 버튼을 눌러 전자장치에 기록되는 형태를 말하기 때문에 단순한 영상통화는 해당이 안될 수도 있다"며 "사건이 터졌을 당시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고 불쾌했다는 여론도 많았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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