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있네? 이것 봐요. 살펴본다고 보는데 끝이 없잖아요."
지난 2일 찾은 은평구 한 아파트. 30도에 육박한 푹푹찌는 날씨에 페트병과 씨름하던 경비원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볼때기를 타고 내려 페트병 더미에 뚝뚝 떨어졌다.
페트병 라벨을 떼느라 손을 바삐 움직였다. 혹시나 빠뜨린 게 있을까 싶어 확인해야 한다며 허리를 구부려 수거함 안쪽까지 꼼꼼히 챙겼다.
지난달 26일부터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가 본격 시행됐다.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쳤다.
투명 페트병은 겉에 붙은 비닐 라벨을 떼고, 깨끗이 씻어서 안에 담긴 이물질을 모두 비워야 한다. 페트병을 찌그러뜨리는 것도 필수다. 이 과정을 거치면 뚜껑을 닫아 별도로 마련된 분리수거함에 버리면 된다. 이를 어긴 아파트는 관리사무소가 최대 3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분리배출 불이행이 적발되면 책임은 오롯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져야한다. 버린 당사자는 아무 책임이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수고'는 고스란히 경비원들의 몫이 된다. 이들은 라벨이 붙어 있고 내용물이 들어있는 페트병는 없는지 다시 뒤져 확인해야하는 과욋일이 늘었다고 하소연한다.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투명 페트병만 분리된 수거함에 라벨이 제거되지 않거나 압착되지 않은 페트병이 보인다. [사진 = 김승한 기자]
◆"분리배출 때문에...일거리 배로 늘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은평구 5군데 아파트 경비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일거리가 늘어 힘들다"는 것이었다. 계도기간을 거쳤음에도 이를 인지하는 주민들이 많지 않아 분리배출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다.
수백개 페트병이 든 수거함을 일일이 뒤져 라벨이 붙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A아파트 경비원은 " 아직까지 지침에 맞게 분리해 배출한 주민은 드물며 대부분 일반 플라스틱에 섞어 버리거나 반대로 투명페트병 분리수거함에 함께 배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번 경비원들이 따로 분리작업을 하는데, 번거롭지만 정부시책이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B아파트 한 경비원은 "엘리베이터에 분리수거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 안내문을 붙이고, 방송도 여러번 했지만 여전히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책임이 아니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계도기간을 거치면서 이건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며 "시행 초기인 겨울 때보단 많이 나아졌다. 그땐 주민들이 아예 아무렇게 버렸다"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분리수거함에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 = 김승한 기자]
C아파트 경비원은 "분리수거날에는 하루종일 페트병 분리에만 매달린 적도 있다. 이게 말이 쉽지 보통일이 아니다"며 "다른 업무도 많은데 여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일을 못한다"고 호소했다.◆아직도 뒤죽박죽...주민들 "번거롭고 헷갈려"
대부분 아파트 분리수거함에는 "음료, 생수 무색(투명) 페트병만 담아주세요", "내용물을 비우고 라벨을 제거한 후 압착해 배출해주세요" 등의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내용물을 살펴보면 이를 제대로 지켜 버려진 페트병은 많지 않았다.
투명 페트병만 모아 놓은 수거함엔 내용물 일부가 남은 병과, 라벨과 제품 안내 스티커가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은 병이 수두룩했다. 잘 분류된 것처럼 보이는 수거함도 들여다보면, 꼭 한 두개씩의 라벨이 붙은 페트병이 보였다.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투명 페트병만 분리된 수거함에 라벨이 제거되지 않은 페트병이 보인다. [사진 = 김승한 기자]
투명 페트병 수거함엔 컵라면 용기, 플라스틱 용기, 스티로폼 일회용 용기 등이 섞여 있기도 했다. 반대로 일반 플라스틱을 모아두는 곳에 투명 페트병이 군데군데 버려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투명페트병으로 분류되지 않는 일반 플라스틱 쓰레기는 물론 유색 플라스틱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C아파트 경비원은 "잘 못버려진 페트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은 생각 없이 버렸겠지만 아래에 있는 페트병 빼내려고 수거함을 다시 엎은 적이 있다. 주민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버릴 때 조금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분리배출제 시행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A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모(41)씨는 "아파트 승강기에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에 대한 안내문이 붙은 것은 봤다. 그런데 내용이 좀 헷갈려서 과일 담는 플라스틱 통이나 반찬통도 투명하면 투명페트병 분리 배출이 가능한 줄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B아파트 주민 김모(31)씨는 "투명페트병을 따로 버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라벨을 제거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안에 음료 좀 묻어 있다고 재활용이 안 되겠냐. 공정과정에서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한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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