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한 핵심 근거가 공개됐다. 윤 총장이 판사들을 불법 사찰한 데 가담한 증거라고 추 장관이 해석한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을 윤 총장의 변호인이 지난 26일 공개한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 대해서는 이런 내용이 문건에 적혀 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변호인 주장 많이 들어주는 편" "주관 뚜렷하기보다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 많이 받는 편" 등등이었다. 다른 재판부의 한 판사에 대해서는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포함"이라고 적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장과 관련해서는 "피고인 측의 무리하고 비상식적인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라고 썼다. 한 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연로해 보이는 느낌"이라는 썼고 일부 배석 판사들에게는 "존재감 없음"과 같은 평가를 적기도 했다. 판사의 취미를 적은 부분도 있었다. "법관 임용 전 대학·일반인 취미 농구리그에서 활약, 농구 실력으로 유명"이라고 적었다.
만약 이 같은 내용을 공판 담당 검사가 개인적으로 수집해 재판에 참고했다면 문제 될 일이 아니다. 재판을 맡은 판사 성향에 따라 판결이 갈릴 수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는 판사가 배가 고프냐 아니냐에 따라 가석방 결정이 확연히 달라지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소를 유지하고 유죄 판결을 이끌 책임이 있는 공판 담당 검사라면 당연히 재판부의 성향을 미리 조사하고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성향 조사가 맞느냐 안 맞느냐는 순전히 그 검사 개인의 책임이다. 조사가 잘못됐다면 재판에서 질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문건의 내용을 검찰이 조직 차원에서 수집하고 정리해 검사들 간에 공유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검찰은 대표적인 권력 기관이다. 판사도 수사해 기소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 기관이 판사 개인의 취미를 조사하고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 "무리하고 비상식적인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며", "존재감 없음"과 같은 평가를 조직 차원에서 생산하고 공유한다는 건 판사들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 수사권이나 기소권이 없는 변호인들이 그런 내용을 만들어 자기 사무실 변호사들 간에 공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윤석열 총장과 검찰 내부 다수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 총장이 변호인을 통해 관련 문건을 공개한 것을 보면 그가 도덕적으로 매우 당당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 안에서는 관행적으로 공판 진행을 위해 해온 일인데 왜 문제를 삼는다면 분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 판사 중에서는 "변호사들도 늘 하는 것"이라며 별것 아니라는 입장도 있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상 규명과 수사를 요구하는 판사도 있다.
결국 이번 문건은 보는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엇갈릴 수 있는 이슈다. 옳고 그름을 일도양단으로 나눌 수 없는 회색 지대에 있다. 이미 그 회색 지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여당 주요 인사들은 윤 총장의 사법처리까지 거론한다. 구속 수사 얘기까지 한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윤 총장에 대한 보복"이라며 "민주주의 파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권력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일깨운다. 권력의 칼은 명백한 비리를 먼저 찾고, 그게 없으면 회색 지대를 친다는 것이다. 권력은 윤 총장 장모와 관련해 윤 총장의 비위를 먼저 찾았다. 그게 여의치 않다는 게 확인되자 '판사 문건'이 터져 나왔다. 그 문건을 사찰이냐, 일상적인 공판 지원 행위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서 밝혔듯이 회색 지대에 존재한다. 하지만 권력의 칼은 그 회색 지대에 엄격한 도덕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찰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내 눈엣가시 같았던 윤 총장을 밀어내려고 한다. 그게 권력의 본성이다. 역사 이래 권력의지는 그 앞을 막는 자를 쳐내고자 했다. 윤석열의 검찰은 그 앞길을 무던히도 막아섰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수사했고, 월성 1호기 원전 수사까지 시작했다. 권력은 이를 참아내기가 힘들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습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일단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에 몸담으면 그 조직의 습관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조직의 습관을 거부하면 조직에서 생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때때로 그 사회적 습관에 갑자기 엄밀한 도덕적 칼날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종종 너무나 무력해진다. 옳고 그름을 일도양단으로 가르는 칼이 들어왔을 때, 그 칼을 쥔 자의 손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만 한다. 그 손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옳음과 합법' 쪽에 서 있을 수도 있고, '그름과 불법' 쪽에 서 있을 수도 있다. 평생 칼을 쥐고 살았을 검찰총장마저 남의 칼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이 당해야 하는 필연적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런데 갑자기 조국 전 장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은 검찰 권력에 저항한 대가라고 생각할 것만 같다. 정파 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간격이 극도로 벌어져 있는 세상이 됐다. 타협과 조정이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김인수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