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전북 고창군 구시포항. 소형 낚싯배를 타고 10여 분 바닷가로 나아가니 국내 최초의 해상 풍력실증단지가 위용을 드러낸다. 이곳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한국판 그린 뉴딜의 첫 사례로 찾은 현장이다. 전북 고창군과 부안군 전력 17.4%가 이곳에서 공급된다.
사면 모두 육지가 보이지 않는 광대한 바다 한복판엔 변전소를 중심으로 60㎿ 규모의 풍력 터빈 20기가 들어서 있다. 한쪽 날개(블레이드) 길이만 65m에 달하는 대형 터빈은 작은 낚싯배를 압도했지만 실제 날개 소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구시포항은 대대로 알이 꽉 찬 조기들이 많아 낚시 명소로 꼽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제주 해역까지 어장이 밀리자 연안엔 점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한산하던 지역이 다시 소란스러워진 건 10년 전 이 지역에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다. 해상풍력 사업자가 조업 피해 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건설을 강행한다는 어민들과, 주민들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사업자 간 충돌이 거셌다. 마을 어르신들은 앞바다에 세워지는 타워 구조물을 손가락질하며 '마을의 묘비석'이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하지만 실증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후 구시포항은 거꾸로 여유를 되찾았다. 풍력단지 반대나 찬성을 외치며 마을을 뒤덮었던 현수막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풍력단지를 찾아온 이들에게 넉넉하게 웃으며 바닷길을 안내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구시포항이 평화를 찾은데는 어민들과 사업자가 함께 노력해 어업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구시포항 실증풍력단지는는 최근 국내 최초로 단지 내 어선 통항을 허용했다. 이곳이 대표적인 주민친화형 해상풍력단지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실증단지 부지는 14㎢로 터빈 반경 100m 제외한 모든 구역은 통항을 할 수 있도록 바뀌며 통항 금지 구역의 95.6%가 줄었다. 수산생물이 서식처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 어초 36기도 단지 주변에 설치해뒀다.
배를 타워에 맞대어 보니 구조물 벽 전체에 따개비가 가득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한국해상풍력 측은 "따개비를 먹기 위해서 물고기들이 발전기 주변으로 몰린다"면서 "이런 해상 구조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어장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를 운전하던 선장은 "요즘에는 농어가 자주 잡히는 편이고 철 때는 학꽁치도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고 설명을 보탰다. 조업철이 아님에도 실제로 풍력발전 단지 발전기들 사이로 조업선이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구조물에 붙은 따개비를 먹기 위해 풍력발전기를 찾은 물고기 <사진=한국해상풍력>
다만 아직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남았다. 인접 지역민들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방법은 찾았다고 하지만 중앙 수협 차원에서는 우려 목소리가 높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해상풍력발전 입지가 연안 조업구역과 중첩되는 곳이 많아 어민들이 조업구역에 제한을 많이 받을 수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수협 해상풍력대책위원회(한해풍)는 지난 20일 세종 산업부 청사 앞에서 일방적 해상풍력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어업인 54만 명의 서명부를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에 각각 전달하기도 했다.
한해풍 측은 "민간단체 협의회에 최근 수협 관계자들이 합류하면서 해상풍력과 수산업의 공존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면서 "이익 공유를 바탕으로 상호 손해 없이 상생 협약을 체결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창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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