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조건으로 체크카드 제출을 요구받는다면?"
궁핍한 주머니 사정에 못 이겨 무심코 이런 요구에 응했다가는 졸지에 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받거나 받기로 약속하면서 체크카드와 같은 전자금융거래 접근 매체를 빌려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청주에 사는 회사원 59살 A 씨는 지난해 4월 5일 목돈이 필요한 데 정상적인 대출이 어렵게 되자 불법 대부업체를 찾았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A 씨에게 "우리는 합법적인 대출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원리금을 회수할 체크카드를 보내주면 대출을 해주겠다"며 "카드는 원리금 상환 후 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승낙한 A 씨는 나흘 뒤 금융기관에서 새로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뒤 업체 측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대출은커녕 자신의 체크카드가 다른 범죄에 이용되면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청주지법 형사1단독 남성우 부장판사는 오늘(29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남 부장판사는 "체크카드를 양도하는 행위는 전자금융거래의 안전과 신뢰성을 침해하는 범행으로 전화금융사기 등 2차 범행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큰 만큼 범행에 의한 경제적 이익이 없다 하더라도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체크카드 양도 행위가 속은 경우라 하더라도 대가를 바란 행동이라면 처벌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해 7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5살 B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습니다.
B 씨는 2016년 300만 원을 대출해준다는 말에 속아 성명불상자에게 자기 명의의 체크카드를 빌려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체크카드는 수천만 원의 피해를 발생시킨 금융사기단의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심은 "체크카드를 빌려줘 사용하도록 한 것과 대출받을 기회를 얻는 것 사이에 대가관계가 인정된다"며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고, 2심은 B 씨가 거짓말에 속은 점에 주목해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가를 받을 것을 약속하고 체크카드를 빌려준 행위 역시 전자금융거래법이 금지하는 것"이라며 1심 판결이 옳다고 봤습니다.
체크카드를 건넨 행위에 대가성이 없다고 봐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충남 아산에 사는 30살 C 씨는 지난해 3월 11일 성명불상자로부터 800만 원을 대출받기로 하고 자신의 체크카드를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C 씨는 "6개월 후 대출금을 상환할 때 원금과 이자를 인출해 가는 용도로 필요하다고 해서 체크카드를 보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사건은 재판한 청주지법 형사1단독 남성우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체크카드 교부는 대출에 따른 후속 업무를 용이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데 불과하므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체크카드의 대여가 대응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C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검찰이 이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해 상급심의 판단이 달라질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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