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12일자 3면 메인 기사로 한·중·일 3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방식을 다뤘다. 간단히 요약하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고 일본은 역량은 있지만 이것저것 따지느라 검사에 소극적이며 한국은 전방위로 무제한 검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코로나 방역 최고 모범국"이라는 여권의 주장도 주로 검사 횟수에 기반하고 있다. 과연 검사 역량과 적극성에 관한한 우리는 칭찬받을 자격이 있어 보인다.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논설위원은 코로나 사태 초기 한국 정부의 적극성을 평가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우리 방역에서 배워야 한다며 "한국은 무엇이든 집중도가 높은 사회여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이후 대구에서 집단 발병이 나와 그의 칭찬이 무색해진 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이 방역에 '고집중도'를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이 고집중 사회일 수 있는 것은 급한 국민성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작고 그마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제조업 강국으로 못 만드는게 거의 없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다. 그리고 사회 인프라가 잘 구비돼 있다. 방역문제에 국한해 본다면 공공 의료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염병 대응에 이만큼 적합한 조건을 갖춘 나라를 찾기도 쉽지 않다. G7에 들어가는 이탈리아는 국민 1000명당 의사수는 3.99명으로 한국(2.3명)보다 많지만 코로나 확진자 사망률은 10배 이상 높다.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 의사들의 수준에서 오는 차이다.
그런데 이 훌륭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지금 정부인가. 어느 정권에 공 돌릴 것없이 6·25 이후 한국의 기적적인 성장이 이런 인프라를 가능케 했다. 의료시스템만 보자면 의료보험법으로 공공의료 기초를 설계한 박정희 정권, 이후 점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국민건강보험으로 발전시킨 5공화국과 6공화국의 기여가 컸다.
정부에 대한 성적표는 주어진 조건과 실력을 어느 정도 발휘했느냐 여부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이 갖춘 실력만큼 하고 있는가. 우리가 가진 조건이라면 당연히 중국보다 잘해야 한다. 공공의료가 열악한 미국보다도 잘해야 한다. '일본은 조건이 좋은데도 못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일본이 못하는 것이지 우리가 기분 좋을 일은 아니다. 도쿄 올림픽을 염두한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베 정부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조건을 가졌으면서 더 잘하는 나라가 있다. 대만이다. 좁은 국토, 높은 교육수준, 발달한 산업과 사회 인프라를 갖춘 나라다. 이 나라는 중국인 입국금지를 가장 빨리 취한 국가중 하나이고 우한 봉쇄 바로 다음날 마스크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다. 대중 무역의존도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데도 그렇게 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1주일에 마스크 1인 2매 구매'는 대만이 먼저 한 것을 베낀 것이다. 12일 기준 대만의 코로나 확진자수는 48명에 불과하고 마스크 수급은 원활하다. 국가별 기초역량까지 고려한 상대평가로 대만 정부에게 A학점을 준다면 우리 정부에게는 얼마쯤 주면 적당할까.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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