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공부에 집중하려고 학교 그만뒀죠."
새해를 앞두고 서울의 한 고졸 검정고시 학원 앞에서 만난 김모(17·서울 마포구 거주) 양은 작년 4월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했다. 일찌감치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로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결국 학교까지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박지형(가명)군도 현재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서 대입 준비를 하고 있다. 중학교 때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의대 진학을 꿈꿔왔던 박 군은 지난해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간 고사를 치른 이후 자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박 군은 "내신 경쟁이 너무 치열한 데다가 학생부 관리 조차 쉽지 않았다"며 "차라리 정시도 확대된다는데, 이참에 수능으로 대학에 가는 것이 유리하겠다 싶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 정시 확대 바람을 타고 수능을 준비하겠다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주로 내신 상위 등급을 사수하지 못해 학생부로 수시 관문을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고교생들이 '수능 올인'을 외치며 자퇴를 강행하는 모양새다.
5일 매일경제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고졸 검정고시 연령별 응시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5년간 10대 응시자(13~19세)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50.7%로 전체 응시자의 절반을 넘은 10대 고졸 검정고시 응시자는 이듬해 56.8%로 늘어난 데 이어 2017년 63.1%, 2018년 65.6%로 해마다 증가했다. 2019년 기준 현재 고졸 검정고시 10대 응시자는 67.7%까지 확대된 상태다.
눈에 띄는 점은 고졸 학력을 취득하고자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10대들의 상당수가 '자퇴→고졸 검정고시→대입 정시' 로드맵을 따라가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미 학원가는 물론 일선 학교 현장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권모 군은 최근 고2 2학기 말에 다니던 특성화고를 자퇴했다. 권 군은 "선취업 후진학 기회도 적고, 실습 기회도 많이 줄어들면서 뒤늦게나마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며 "학교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검정고시로 고득점을 따서 수시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하여 자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권 군이 다니는 검정고시 학원에는 여느 입시학원처럼 정시 준비반, 수시 준비반 등으로 나뉘어 대입을 준비하는 10대 자퇴생들이 많다고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검정고시 학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 고졸 검정고시까지 통과하면 바로 대입 지원자격이 생기니까 많이들 찾아온다"면서 "현재 검정고시 학원 재원생의 80~90%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검정고시 학원 관계자는 "수강생 중엔 외고 자퇴생도 있는데,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내신 중심 수시를 버리고 수능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일부 중학생들도 고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까지 취득 한 뒤 대입 관문을 뚫겠다는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학교 현장에서도 이같은 현상을 감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소재 한 일반고 교사 A씨는 "방학 전후로나 학교 중간·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내신 때문에 자퇴를 고민하며 상담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대입 수시에서는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워낙 많고 입시 체계도 복잡하다보니 아예 수능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공시된 학업중단학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고교 자퇴생 2만4101명 가운데 학업 관련 부적응(3181명·학습부진이나 학업기피 등), 조기 진학 등 자발적 의지의 학업중단으로 분류되는 기타(1만2128명) 학생수가 절반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질병 사유(1176명)나 가사 문제(262명), 대인관계 부적응(374명) 등 비학업 관련 사유는 적은 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시 때때로 바뀌는 각종 교육 정책의 불확실성도 학생들의 자퇴 행렬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고교 자퇴생 학부모(서울 양천구 거주)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자주 바뀌다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서 준비해야 할 지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지금도 고교 학점제나 자사고 폐지 문제 등을 볼 때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둘째도 중학교만 보내고 고교 땐 유학이나 검정고시로 갈아타야하나 벌써부터 고민이 들 정도"라고 했다.
[고민서 기자 / 신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