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이나 홍대 같은 번화한 거리에 가면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전동킥보드들을 볼 수 있다. 주인 잃은 킥보드인가 싶지만, 이는 운전면허가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탈 수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다. 미국에선 이미 대중적인 서비스로 발돋움한 전동킥보드 공유는 한국에서도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서비스 이용은 거칠 것 없이 간편했다. 앱을 깔고 본인 인증을 한 후 결제할 카드 정보와 운전면허증을 등록하면 끝이다. 지난 25일, 점심시간이 막 끝날 무렵 전동킥보드가 몰려 있는 강남으로 향했다. 앱 내 GPS를 확인해보니 가장 가까운 킥보드는 강남역 1번 출구에 있었다. 1번 출구에 놓여 있는 킥보드에 QR코드를 인식하니 잠금이 풀리며 주행 가능 상태가 됐다. 눈 깜짝할 새 달릴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용 요금은 5분에 1000원, 5분을 넘으면 1분당 100원씩 추가되고 운행이 종료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택시비보단 저렴하지만 10분만 타도 1500원이니 마냥 부담 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반납은 앱 내에 'P'로 표시된 주차공간에 킥보드를 가져다 두고 앱을 통해 반납처리를 하면 된다. 해당 서비스 업체에 따르면 주차 공간은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고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되 이용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지정 장소에 주차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보니 헛걸음을 하는 이용객들의 불만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차도로만 주행할 수 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 내 주행은 불법이다. 호기롭게 킥보드에 올라탔으나 도저히 강남대로로 진입할 용기가 나지 않아 폭이 좁은 이면도로에서 조심스레 주행을 시작했다. 땅에 발을 구르고 가속레버를 누르면 킥보드가 부드럽게 앞으로 출발한다. 처음 무게중심을 잡는 데 애를 먹었지만 적응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확실히 원동기 경험자나 운동신경이 있는 이들에게 더욱 적합한 이동수단이라 느껴졌다. 약 150m 길이의 도로를 전동킥보드로 이동하니 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택시나 버스를 타긴 가깝고, 걷기엔 먼 애매한 거리를 이동할 때 돋보인다는 전동킥보드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행인들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아닌 킥보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지나쳐가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엄연히 합법적인 주행이었지만, 불법 행위를 하는 듯한 불편함이 몰려왔다. 게다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모두 혼재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로 자유롭게 주행하는 건 꿈같은 얘기였다. 조금만 속도를 내려 하면 곧장 오토바이가 앞길을 막아섰고 뒤에서는 차가 경적을 울렸다. 잠깐의 체험에도 전동킥보드가 거리 위 '애물단지'로 불리는 이유를 절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동의 편리함이라는 장점보다 취약한 안전성이라는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한 시간 가까이 강남 거리를 지나 다니는 동안 전동킥보드를 탄 사람들을 대여섯명 목격했지만, 안전모를 착용한 운전자는 아무도 없었다. 공유 전동킥보드의 특성상 짧은 거리를, 단시간에 이용하는 수요가 대다수라 안전모를 착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이 뿐 아니라 모두가 인도에서 사람들을 헤치며 주행 중이었다. 불법 행위를 떠나 행인들 사이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모습이 딱 보기에도 위태로웠다.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이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경험자 200명을 대상으로 안전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 대부분인 92%가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법적으로 지정된 차도가 아닌 공원, 대학캠퍼스, 자전거도로, 인도 등에서 주행한다는 응답도 70%에 육박했다.
이처럼 자신과 타인의 안전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보니 전동킥보드 사고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4년간 전동킥보드 관련 사고는 총 528건으로 집계됐다. 매년 꾸준히 증가해온 사고는 지난해에만 총 233건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전동킥보드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전동킥보드 규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청원인은 "전동킥보드는 1인승 전기자동차와 별 차이가 없다"며 "수술한 의사가 '전동킥보드와 충돌했는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다칠 수가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호소했다.
커지는 공유 전동킥보드 시장과 운전자·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차도로 내려서면 운전자에게, 인도로 올라서면 보행자에게 위협이 되는 만큼 자전거 도로로의 주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에 정부는 전동킥보드 관련 규제 손질에 나섰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18일 시속 25km 이하 속도의 개인형 이동수단은 자전거도로로 주행할 수 있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또 개인형 이동수단 주행의 필수 조건이었던 운전면허 취득도 면제하기로 했다. 다만 국회 논의 등이 추가로 필요해 실질적인 법 개정은 올해 하반기로 미뤄질 전망이다.
이 같은 정부 움직임에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공유 전동킥보드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 박신욱 사업기획팀 팀장은 "전동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이 앞으로 도시에 가져올 긍정적인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이번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결정은 합리적"이라며 "보다 많은 사람이 전동킥보드를 자전거도로와 같은 안전한 장소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이 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어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안전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만큼 이에 발 맞춰 자체 정비, 점검 시스템을 보다 정밀하게 개선하겠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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