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원은 최근 성관계 도중 여자친구 몰래 콘돔을 제거한 경찰관을 '성폭행범'으로 유죄 판결했다. 이렇게 성관계 중 상대방 합의 없이 피임기구를 제거하거나 훼손하는 것을 '스텔싱(stealthing)'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스텔싱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스텔싱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공론화돼 있고, 법적 처벌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위스, 캐나다 등 국가에서는 스텔싱을 강간, 성폭행으로 판결한 바 있다.
스텔싱은 성관계 중 콘돔 제거, 콘돔에 구멍을 뚫는 등 피임기구 훼손, 정관수술을 하지 않았으면서 했다고 하는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스텔싱은 상대방에게 피임했다고 안심시킨 후 몰래 성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신 후 피해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스텔싱 관련 법률은 고사하고 개념조차 부족한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텔싱 방법이나 경험담이 공공연하게 올라오고 있다. '여자 친구와 결혼하기 위한 방법' 혹은 '크리스마스 커플들을 위해 콘돔에 구멍냈다'는 모텔 아르바이트생 글이 유머로 공유될 정도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스텔싱이 발생할 수 있다. 육아계획 없는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을 선언하고 결혼했지만 자녀를 갖고 싶어 상대를 속이고 스텔싱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도 스텔싱을 단순히 남녀 사이 고민거리로 취급하며 경험담을 공유하는 게 고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자 친구가 콘돔을 안쓴다" 등과 같은 게시물이 올라오면 "남자 친구와 대화해보라"는 식의 반응이 이어질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스텔싱 관련 법안이 없어 여성 입장에서 뾰족한 대응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텔싱 피해자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단이 없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스텔싱은 피해 여성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며 "관련 처벌 규정이 없어 고소가 쉽지 않아 현재는 법적 해결보다 사과나 사후피임처럼 당사자가 원하는 해결을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스텔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지난 3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스텔싱은 범죄입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2만 8000여명 동의를 얻었다. 직장인 공 모씨(24)는 "결국 여자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남녀 모두 스텔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손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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