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정현 씨(22)는 한 학기가 다 끝나가고 있지만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둔 시간표를 보지 않으면 당장 다음 수업이 무엇인지 가물가물하다. 강의실이나 교수님 이름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급히 검색할 것이 있어 포털사이트에 들어갔으나 잠깐 사이 뭘 검색하려 했는지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창을 닫은 적도 여러 번이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게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스마트폰이 기억을 대신해 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김정현 씨는 전형적인 '영츠하이머'다. 영츠하이머란 'Young(젊은)+Alzheimer(알츠하이머병)'를 합친 신조어로, 건망증과 기억력 감퇴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을 말한다. 사실 김 씨가 겪고 있는 일련의 증상은 여느 대학생, 직장인들의 일상과 다를 게 없다. 2030세대가 때 이른 건망증 등으로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건망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주로 겪는 증상으로는 '대화 중 하려던 말을 잊는다'(31.2%),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다'(30.4%)가 대표적이었다.
깜빡하는 영츠하이머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영츠하이머 증가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과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2015년 1시간 34분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성인의 스마트폰 하루 사용 시간은 올해 들어 2시간 3분을 돌파했다. 2017년 통계청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27%가 과의존 위험군에 속하기도 했다. 이렇게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뇌를 사용해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 때문에 두뇌 기능이 점점 둔화해 영츠하이머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치매로 명명된 이 증상은 의학적인 치매 질환에 포함되지 않아 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 빈도를 낮추면 쉽게 회복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겪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도 젊은 세대의 건망증과 기억력 감퇴를 유발하는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우울증에 걸리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증가하면서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 기능이 약해져 건망증에 시달릴 수 있다. 특히 우울증 환자가 20·30세대에서 급증하고 있어 영츠하이머의 증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인구 10만 명당 진료 인원 기준으로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2년 750명에서 1096명으로 46% 증가했고, 30대의 경우 865명에서 1054명으로 21%가량 늘었다. 할 일을 깜빡깜빡 잊는 일이 잦다면, 우울증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이 있어 상담을 비롯한 병원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음주도 영츠하이머의 등장을 가속하고 있다. 폭음 후 몇 시간 동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이른바 '블랙아웃'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441명 중 54%가 블랙아웃 현상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을 만큼 일반에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영츠하이머 증상과는 다르게 블랙아웃은 방치하면 할수록 실제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약 1000억 개의 뇌세포를 갖고 태어나서 하루 약 10만 개의 뇌세포가 파괴되는데 과음 시 100만 개, 기억을 잃을 정도로 폭음하면 수천만 개 이상이 한 번에 파괴된다. 술의 독소가 기억 전반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를 손상시키고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뇌가 쪼그라들며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술을 처음 접하게 되는 20대부터 잘못된 음주습관인 과음, 폭음을 경계하는 것이 영츠하이머 혹은 실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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