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반 영국의 베드포드 7대 공작부인은 친구들을 초대해 스콘, 케이크 등 티푸드를 홍차와 함께 먹으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영국 상류층의 문화에서 시작된 애프터눈티는 홍차와 디저트를 먹는 것 그 이상의 문화가 들어있다. 응접실과 정원 등 그 공간을 향유하고 오후 시간을 같이 공유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홍차와 스콘으로 대표되는 영국식 애프터눈티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애프터눈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목받고 있다. 애프터눈티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정갈하고 건강한 한식 티푸드가 접목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직접 '한식 애프터눈티' 문화를 경험하고자 지난 11일 '오설록 1979'와 '김씨부인'을 직접 방문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오설록 1979'는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시그니처 매장이다. 다른 오설록 티하우스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오설록 1979에서만 있는 애프터눈티세트를 만나기 위해 신용산역을 찾았다. 이곳에 들어서면 이광호 작가의 제주 자연을 형상화한 천장 장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톤 다운된 모던한 색과 장식들이 세련되고 여유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설록 1979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프터눈티세트가 목적이다. 오설록은 제주의 넓은 녹차밭에서 자란 녹차와 어울리는 한식 디저트를 만들어 애프터눈티세트를 구성했다. 오설록 관계자는 "커피와 같은 다른 음료를 선호해도 차를 즐겨 마시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차에 대한 소비를 늘리기 위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티세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네이버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대학생 윤승연 씨(가명·24)는 "오늘 생일이라 고급스러운 디저트를 먹는 호사를 누리려고 친구들과 왔다"며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식 퓨전 애프터눈티를 보고 호기심에 왔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다"고 밝혔다.
애프터눈티세트는 함께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2인세트와 홀로 힐링을 위해 찾는 사람을 위한 1인세트가 있다. 2인 세트는 16종의 디저트를 5만원에, 1인 세트는 8종의 디저트를 2만원에 만나볼 수 있다. 1인 세트를 주문하니 함께 마실 차를 골라야 했다. 차를 선택하기 전 미리 시향할 샘플이 제공되지만 티 소믈리에에게 차 추천을 부탁했다. 구수한 풍미가 있고 깔끔한 맛으로 애프터눈티세트와 잘 어울린다는 '삼다연 후'를 주문했다. 애프터눈티세트에 사용된 다구는 이인화 도예가의 작품으로 다구에 담긴 디저트는 먹기 아까워 포크보다 카메라에 먼저 손이 갔다. 1인 애프터눈티세트는 강정과 튀일 쿠키, 과일 젤리, 당근 머핀, 앙버터 녹차 스콘, 땅콩 타르트로 구성됐다. 구운 현미와 피스타치오, 말린 크랜베리를 넣은 강정과 녹차·호지차·삼다연 튀일쿠키는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또 당근 머핀과 녹차 스콘, 땅콩 타르트는 제주의 좋은 재료로 애프터눈티푸드를 만들어 인공적이지 않은 건강한 향이 느껴졌다. 제주에서 자란 녹차, 땅콩 등의 풍부한 맛과 구수하고 깔끔한 차가 잘 어우러졌다.
'김씨부인'의 큰 소반차림에는 약과, 매작과, 잣설기, 홍옥정과, 오미자정과, 조란 등 8가지의 다과로 구성돼있다. [사진 출처 = 손지영 인턴기자]
작년 9월 문을 연 김씨부인은 한식 애프터눈티 카페로 이미 유명세를 탔다. 서래마을에 위치한 김씨부인에 들어서니 카페 내부가 마치 동양화를 연상하게 했다.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흰 벽이 세련된 느낌을 주며 작은 소품 하나도 전통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삼베 발을 쳐 공간을 나눈 점도 이곳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요소였다. 김씨부인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은 소반차림을 주문했다. 소반차림을 앞에 두고 조용하게 대화를 즐기는 손님들의 모습은 양반집 규수들 같았다. '큰 소반차림'은 7가지의 디저트를 1만5000원에, '작은 소반차림'은 5가지 디저트를 8000원에 만날 수 있다. 개성주악, 떡, 정과, 한과류를 포함한 큰 소반차림을 주문했다. 큰 소반차림의 특징은 계절마다 구성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다. 김명숙 김씨부인 대표(63)는 "우리 한식에는 사계절이 뚜렷해 봄에는 화전이나 딸기를 올리고 요즘 같은 때는 밤편이나 잣설기를 준비한다"며 "메뉴 구성을 자연의 흐름과 같이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 한다"고 말했다.애프터눈티세트가 보통 2단·3단 트레이에 올려진다면 이곳에서는 찻상에 펼쳐진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고급스러운 디저트가 가득한 큰 소반차림을 받으니 마치 김씨부인댁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소반차림에는 약과, 매작과, 잣설기, 홍옥정과, 오미자정과 등 8가지의 다과가 올라왔다. 차는 메밀차가 준비됐다. 김 대표는 "다과가 재료 본연의 맛을 내기 때문에 맑은 메밀차가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음식이 정갈하게 담긴 모습으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겼으면 이제 맛볼 차례다. 어떤 것부터 먹어야 할지 몰라 주저하자 김 대표는 먹는 순서는 따로 없으니 먹고 싶은 것부터 먹되 오미자정과가 새콤해 깔끔하니 마지막에 먹으라 조언했다. 접하기 어려운 홍옥정과를 먼저 맛보니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한층 입맛을 돋우었다. 또 약과나 잣설기, 매작과도 직접 전통의 방식으로 만들어 우리가 흔히 접하던 맛과 확연히 달랐다. 항상 먹던 디저트의 자극적인 단맛과는 사뭇 다르게 입안을 편안하게 해주는 맛이다.
[디지털뉴스국 손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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