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경찰서는 "하반신이 마비됐다"고 보험사를 속여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펀드매니저 박 모씨(36)를 불구속 입건했고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2013년 10월 같이 술을 마시다 다투고 헤어진 여자 후배가 연락을 받지 않자 서울 강서구 소재 빌라로 찾아갔다. 그는 가스배관을 타고 5층까지 올라갔지만 옆집으로 잘못 들어가 발각됐다. 도주하기 위해 베란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박 씨는 요추 3번이 골절되면서 크게 다쳤다.
박 씨는 "친구 집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다 실수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돼 걸을 수 없다"고 4개 보험사를 속였고 2014년 12월까지 총 3억9000만원의 보험금을 가로챘다. 보험금은 주로 생활비와 병원비로 쓰였다.
박씨는 의사인 아내 덕분에 대학 병원에서 담당 교수를 쉽게 속여 진단서를 발급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박 씨의 재활 치료를 담당했던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신경이 지나가는 요추가 다치면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 있긴 하다"며 "박 씨가 계속 연기를 한데다 설마 의사 가족이 사기를 치겠냐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의 아내도 그가 하반신 마비로 보험금을 신청한 것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박 씨 사기 행각은 그가 2015년~2018년에 걸쳐 여러차례 교통사고를 내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포착됐다. 금융감독원은 서류 상으로는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 없이 돌아다닐 수 없는 그가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사고를 낸 게 의심스럽다며 지난 5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박씨가 국가 장애인 등록 과정에서 하반신 마비가 아닌 것으로 결정된 자료 등을 확보해 그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희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