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에 대해 경찰이 잘못을 인정했다. 백씨 사망 3년 만이다. 경찰은 백씨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집회·시위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취하할 계획이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지난 6개월 간 백남기씨 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결과 "당시 집회·시위 대응은 경찰력이 남용되고 집회·시위 자유가 침해된 과잉진압이었다"고 21일 발표했다. 백남기 씨는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서울시 종로구 서린교차로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치료받던 중 2016년 9월25일에 사망했다.
먼저 조사위는 경찰이 철저하게 '관리·통제적' 관점에서 집회·시위에 대응한 점을 지적했다. 조사 결과 경찰 지휘부와 경비인력은 특정지역(청와대 경호구역)에 대한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차단선을 3겹으로 만들고 '숨구멍 차단(차벽 사이 공간 제거)' '지하철 무정차' '솥뚜겅 작전(지하철 역사 내부에서 외부 출입 차단)' 등 봉쇄작전을 진행했다. 이는 경찰력이 필요한 최소 한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경찰이 사건 당일 267개 중대(2만여명)와 버스 738대, 차벽트럭 20대, 살수차 19대 등을 이용해 광화문·서린교차로 등에 차벽을 설치한 것 역시 국민의 집회 결사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조사위는 해석했다. 또 사건 발생 당일 집회신고에 대해 경찰 재량으로 금지통고한 것 역시 집회·시위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봤다.
백남기 씨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살수행위에 대해서도 위법행위로 판단했다. 경찰이 살수차에 대한 안전성 검증과 살수요원에 대한 훈련이 미비한 상황에서 살수행위를 하고 경찰청 내부지침을 벗어나는 혼합 살수를 한 것은 근거 없는 위법행위라는 설명이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경찰은 오후 4시30분부터 11시10분까지 물 202톤을 사용하고 여기에 최루액 440리터, 염료 120리터를 혼합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위 관계자는 "위험이 명백한 상황이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직사살수를 한 것과 살수 행위를 주시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백남기 씨가 입원한 뒤에도 서울대병원과 접촉해 피해자 관련 정보를 수집했으며 사망 이후에는 ‘빨간우 가격'(물대포가 아닌 빨간우의를 입은 사람이 백남기 씨를 때린 게 사망 원인)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가족이 거부하는 부검을 집행하려 59개 부대(5900여명)를 동원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당시 진압에 나섰던 관련자 징계를 위한 감찰조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인사조치를 하지 않았고 일부는 심사를 거쳐 승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권력 남용에 따른 인권 침해 사실을 자인한 조사위 결과 발표에 따라 경찰은 피해자 가족에 사과하고 해당 집회의 주최자 및 참여자에게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할 방침이다. 또 경찰 물리력 사용에 따른 신체 위해를 최소화(살수차·방수포 금지 등)하기 위해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력 대응 관점을 '관리'에서 '보장'으로 바꾸는 업무지침도 수립할 계획이다.
[이용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