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사건 무죄에 분노한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규탄했습니다.
350여 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오늘(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는 이름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시민행동은 "안 전 지사 무죄판결은 미투운동 이후 성평등한 사회로의 전환을 기대했던 수많은 시민에게 큰 좌절을 안겼다"며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는 사회에서 더는 살지 못하겠다는 여성들이 사회를 박살 내려고 거리로 나섰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안 전 지사를 고소한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는 정혜선 변호사의 대독을 통해 발표한 편지에서 "살아있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온전치 못하다"며 "죽어야 미투로 인정된다면 죽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고 호소했습니다.
김씨는 "세 분 판사님들은 제 목소리를 들었나. 검찰이 재차 확인한 증거들을 봤나. 듣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면서 왜 묻나. 왜 내 답변은 듣지 않고 가해자 말은 귀담아듣는가"라며 재판부 판사 3명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하는 판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며 "바로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있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다가 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도 발언대에 서서 "저는 김지은 씨를 지지한다"며 "안희정 씨는 범한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감옥에 가라. 그러면 기꺼이 용서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 오매 씨는 "1심 재판부는 새 입법이 있으면 해결될 거라고 했지만 틀렸다"며 "피해자에게서 찾은 단서 하나하나, 가해자 측 증인들이 일방적으로 말한 것을 피해자의 '예스'로 읽었다"고 법원을 겨냥했습니다.
오늘 집회에 참가한 여성 57살 정 모 씨는 "안희정 사건이 이슈가 돼서 그렇지 이전부터 이런 일은 있었다"며 "여성들이 겪는 '위력' 상황을 재판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씨는 "제가 젊었을 때는 불편해하기만 했다면 지금 젊은 친구들은 참지 않는다.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은 달라졌는데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에 선배로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전에 정해진 집회의 '드레스코드'는 따로 없었지만,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정의가 죽었다는 의미에서 '근조'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참가 여성 김 모(24) 씨도 "불평등에 항의하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집회는 참가자를 여성만으로 제한하지 않아 소수나마 남성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시민행동은 원래 오는 25일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이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자 집회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앞서 서부지법은 김씨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 대해 업무상 위력이 행사됐다고 보기 어렵고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고 당일 오후 서부지법 앞에서 '사법부는 유죄'라고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집회가 열리는 등 무죄 선고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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