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명문 사립고교에서 나란히 문·이과 전교 1등을 한 자매의 부모가 시험지 검토 권한을 가진 해당 학교 교사로 근무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학교 측은 "두 학생이 공부를 잘 했을 뿐 시험지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대입에서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의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교사인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게 적절한지를 두고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12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 S여고의 현직 교무부장 H씨의 쌍둥이 자녀가 올해 치러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각각 문·이과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러자 강남·서초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현직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녔다니 정황상 석연찮다" "1학년 성적이 전교 100등 밖이었던 학생들이 짧은 시간에 이처럼 일취월장하는 게 가능하냐" "시험지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등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논란이 커지자 H씨는 "아빠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밤샘 노력이 평가절하되고, 심지어 의심까지 받게 돼 마음이 상한다"며 해명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H씨에 따르면 이번에 2학년 이과 전교 1등을 한 학생은 1학년이던 지난해 1학기엔 전교 59등, 2학기엔 전교 2등을 했다고 한다. 2학년이 되면서 주요 교과에서도 성적이 오르는 상승세를 보였기에 전교 1등을 한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문과 1등을 한 학생도 지난해 1학기 121등에서 2학기 5등을 한 뒤 올해 1학기에 1등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교무부장으로 시험지를 봤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공개된 교무실에서 약 1분간 형식적 오류를 잡아낸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학교 측도 현재까지 시험지나 성적 관리에서 드러난 문제는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면서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S여고 교직원 자녀 2명이 이번에 동시에 문·이과 전교 1등을 했다는데 부정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게재돼 12일 오후 4시 기준 3900여 명이 참여했다.
고등학교 교직원과 자녀의 같은 학교 배정을 법적으로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도 등장했다. 지난 10일 첫 개통한 서울시교육청 청원게시판에도 11일 '고교 재직자와 그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와 12일 오후 4시 기준 가장 많은 추천(225명)을 받았다. 이 청원 게시자는 "고교 학생부 기록이 가장 중요한 대입전형 요소가 된 현실에서 고교내신과 학생부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고교 재직자와 그 자녀가 같은 학교에 재학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고교 교사 및 행정직원은 물론이고 사립학교의 경우 재단 운영자의 직계 자녀 재학을 금지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실제 현직 교사가 재직 중인 학교에 해당 교사의 자녀도 입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공립학교 교사보다는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근무하는 사립학교 교사의 경우 거주지가 학교 근처일 가능성이 높아 자연스레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한 사립학교 교직원은 "재직중인 선생님의 조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해 선생님이 해당 학년을 피해 다닌 사례도 있다"며 "학교 선생님들의 양심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문제라 시스템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립학교는 교사와 자녀를 분리 배치하는 상피제(相避制) 적용 대상이 아니며 공립학교도 강제되고 있지는 않다. 한 자사고의 현직 교사는 "교사들이 가능하면 자녀를 본인이 재직 중인 학교로 보내려고 한다"며 "그렇게 될 경우 직접 자녀와 같은 학년을 담당하지는 않더라도 담임이나 동료교사들이 아무래도 생활기록부 등을 더 신경 쓰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3일 이 학교에 대해 현장 조사 등 특별장학을 진행할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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