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밤 11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입구 6번 출구 방향 대로변에 '예약'등을 켜놓고 선 두 택시. 30분 넘게 손만 휘젓던 직장인 정 모씨(33·여)가 10분째 공회전 중이던 앞쪽 택시 뒷문을 열자마자 "타지마세요. 예약 있습니다"란 말이 돌아왔다. "계속 대기하고 있던데 예약이 없는 것 아니냐”는 정 씨의 반문에 택시기사는 한층 더 고압적인 태도로 내릴 것을 요구했다. 고의로 빈차등을 끄거나 예약등을 켜고 정차 또는 서행하며 손님을 가려받는 행위는 승차거부에 해당한다.
정 씨의 상사 김 모씨(44·남)는 뒤에 서있던 택시로부터 다른 방식의 승차거부를 당했다. 김 씨가 사는 경기 일산은 무늬만 '예약등'을 켜놓은 택시들이 가고 싶은 매력적인 카드였지만, 김씨는 이내 기사가 다짜고짜 제시한 흥정에 기분이 상했다. 김 씨는 "처음 탄 택시 가 '4만원은 줘야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해 하차했는데 두번째 택시 기사는 자신의 집이 일산 반대방향이라며 5만원을 불렀다"며 "언제부터 승객이 기사가 사는 곳까지 신경써야 됐냐"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결국 4만원을 부른 세 번째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하루에 수백건씩 발생하는 서울시 택시들의 승차거부 행태에 시민들의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택시 승차거부 민원 접수 건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서울시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승차거부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택시기사들이 서울시 공무원들이 전담하는 택시 승차거부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아 단속이나 처벌 강화만으론 근절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3월말까지 집계된 택시 승차거부 현장단속 및 처분 건수는 각각 233건과 214건으로 처분율은 92%에 달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승차거부 단속에 걸려 처분되는 택시 비율은 절반 수준이었지만, 올해부터 서울시가 처벌 강화를 위해 기존에 자치구가 담당했던 승차거부 행정처분권을 환수해오면서 단속 실효성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서울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밤거리 택시들의 횡포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심야시간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명동·홍대입구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동대문·이태원 등 서울 시내 주요지역에서 예약등을 켠 채 승차거부를 하거나 서행하면서 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다수의 택시기사들은 일부 기사들의 승차거부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현재 단속 시스템에선 승차거부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속 주체다. 30년 이상 택시운전을 한 한 70대 택시기사는 "장거리 손님을 가려받기 위해 예약등 켜놓고 있다가 적발돼도 경찰이 아니라 공무원이면 절대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가족들이랑 문자 중이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쉬고 있었다' 등 핑계거리가 다양하고 심지어 '당신들 때문에 영업 손해난다'며 으름장 놓는 기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사납금 부담 운운하지만 단거리라도 부지런히 뛰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5만~10만원짜리 장거리 운행만 찾으려는 일부 기사들 때문에 전체적인 인식이 나빠졌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단속 공무원은 "모든 단속은 공무원들이 하고 경찰은 단속과정에서 민사·형사상 문제가 생겼을 때 지원하는 형태라 경찰이 동행하지 않은 현장은 욕과 거짓말로 가득하다"며 "차라리 반항을 하면 더 강력하게 제재할 마음이 생길텐데, ‘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동정심에 호소하면 더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단속과 처벌 강화만으로 잡히지 않는 승차거부에 대해 일각에선 대중교통 운행 시간 연장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근로시간 변화에 따른 인력확충과 예산 문제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택시기사들의 반발이다. 택시기사들이 '갑'이 되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2시간이 버스·지하철 연장 운행으로 침범당할 경우 4만5000여명에 달하는 택시 기사들의 원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중교통 운행 연장은 예산 확충 같은 표면적 이유말고도 정치적인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며 "심야시간 운행을 꺼려하는 2만대 이상의 개인택시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하는 인센티브 제도 같은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단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택시 기사들의 반발과 ‘잡아떼기'를 막기 위해 이달부터 단속인원 전원에게 동영상 촬영과 녹취가 가능한 장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 소속 공무원 80명은 격일제(하루 40명씩)로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서울 4개 지역에서 승차거부를 단속하고 있다. 승차거부 적발에 따른 과태료는 횟수에 따라 20만→40만→60만원으로 늘어난다. 과태료와 별도로 ‘2년내 2회 적발'시 법인사업자는 30일 자격정지, 개인사업자는 180일 운행정지 처분을 받으며 3회 적발시 택시사업자와 개인사업자 면허가 모두 취소된다.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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