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행정처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음을 시사 하면서 사법부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졌다. 김 대법원장 결정에 따라 자칫 전·현 사법부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지 못하고 법원 안팎으로 갈등을 키우는 현재 모습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30일 김 대법원장은 출근길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대내외 의견을 종합해 한꺼번에 말씀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일선 법관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고 그와 같은 의견 또한 제가 경청해야 할 한 부분이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 좀 더 시간을 갖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난 25일 특조단이 행정처의 재판개입은 없었고 의혹 대상자들을 사안에 따라 내부 징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조사를 김 대법원장이 3일 만에 형사고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사법부가 혼돈에 빠져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조속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현재 논란의 1차 원인은 특조단이 조사 결과 보고서에 각종 쟁점 사안에 대한 행정처 내부의 정무적 검토 내용까지 그대로 공개하면서 여론을 자극한 탓도 있다.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사건, KTX 승무원 사건 등에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한 것처럼 비춰지면서 '국정농단', '적폐청산' 프레임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29일 KTX 승무원들이 대법원 점거 시위가 벌어졌고 이날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도 진행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김 대법원장에게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고발 또는 수사의뢰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현 행정처에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인사모(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출신 강경파 판사들이 이 사안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논란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실제 지난 29일 오후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재한 행정처 소속 실장 및 심의관들 회의에서도 강경파들이 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 시작에 앞서 김 차장은 "부담·비난을 감수할테니 열린 토론을 해달라"는 취지의 김 대법원장 말을 참석자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의에서는 행정처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부장급 간부들이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김 대법원장이 공공연하게 고발 의지를 피력하면서 다음달 4일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대법원장 의중이 반영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기상 법관대표회의 의장은 지난 29일 내부게시판에 "특조단 조사 결과에는 반헌법적 행위가 포함돼 있다"며 "대법원장이 헌정유린행위 관련자들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 법관회의 의제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장이 사실상 결론의 방향을 정한 듯 한 글을 올리는 것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방에 근무하는 한 법관대표는 "법관대표회의 전체 입장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어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위·중견 법관들을 중심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날 내부망에 "법치행위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때까지 하는 행위가 아니다"는 글을 올렸다. 또 이번 사안이 엄중한 것은 인정하지만 법원 외부 힘을 빌리는 것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고법판사는 "이번 조사 결과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로부터 내려졌으니 김 대법원장은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김 대법원장이 고발 입장을 공식화하면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현재 대법관들 절반 이상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올해 1월 참여연대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대법관 등 2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지난해 12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한 법원장급 인사는 "대법원이 나서서 사법불신을 확산시키는 형국"이라며 "판사가 법원 운영상의 논란에 대해 검찰에 수사 받으러 다니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사법의 역할과 위상은 추락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채종원 기자 / 부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