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먹어보니까 우리나라 거랑 완전 달랐어요. 현지식을 그대로 들여오면 잘 될 거라 생각했죠."
이미 포화 상태라고 여겨졌던 국내 쌀국수 시장에서 베트남 현지 음식의 맛을 똑같이 재현해 요식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에머이'(이모·사장님·여기요 등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베트남어). 김명상 에머이 대표(46)는 에머이 성공 요인에 대해 구수하면서도 무심한 경상도 사투리로 '베트남 현지 그대로'를 강조했다.
서울웨스틴조선호텔 주방장 출신 권영황 에머이 이사 [사진 = 김지혜 에디터]
경상북도 안동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고향 친구 동생인 서울웨스틴조선호텔 주방장 출신 권영황 이사와 힘을 합쳐 에머이를 만들었다. 지난 2015년 8월 1호점인 종로본점 문을 열면서 가맹사업도 시작했다. 2년이 조금 넘은 현재 직영점 8개, 가맹점 95개 총 103개의 점포가 생길 정도로 급성장했다. 직영점 직원수는 총 120여 명에 달하고 한 곳당 일평균 매출액은 600만원 가량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젊은 층들이 꼭 가봐야 할 맛집으로 꼽는다. 최근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 종로본점이 등재됐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2는 "가장 베트남스러운 한국의 쌀국수집"이라고 에머이를 소개했다.김 대표는 에머이를 열기 전 수많은 '미투(Me too)' 브랜드를 생산하며 찜닭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봉추찜닭 1호점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먹던 안동찜닭을 서울에 처음 선보여 대박을 친 것. 찜닭의 매력을 더해주는 굵은 '납작 당면' 역시 김 대표의 작품이다. 봉추찜닭 레시피와 상호명, 인테리어·소품 등 김 대표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본격적인 가맹사업으로 전국구 나아가 세계적인 규모로 키운 건 그의 군 동기였던 현 장준수 봉추푸드시스템 대표다.
'봉추찜닭부터 에머이까지'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급부상한 김 대표를 지난 19일 서울 종로 에머이 본사에서 만났다. 잇따른 사업 성공 비결을 궁금해하자 '자기 자랑'이라는 걸 못하는 그는 "그냥 내가 먹어보니 맛있으니까 잘 될 것 같았는데···"라면서도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군 중 기존에 없던 색다른 제품을 내놓는 게 비결이 아닐까 싶다"라고 답했다.
에머이 종로본점 [사진 = 김지혜 에디터]
-에머이가 이렇게 인기를 끌 줄 알았나.▷잘 될 것이란 확신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빨라 놀랍기도 하다. 몇 년 전 봉추찜닭이 베트남에 점포를 오픈하면서 출장을 자주 다녔다. 현지에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먹던 쌀국수랑 맛이며 비주얼이 전혀 달랐다. 우리나라는 건면을 쓰는 반면 베트남 현지에서는 쌀가루로 뽑아낸 생면을 썼다. 한국 쌀국수엔 숙주가 듬뿍 들어가 있는데 현지에선 숙주의 비린맛이 국물맛을 해친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쌀국수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먹어오며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이미 쌀국수 시장은 포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베트남 현지의 맛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이미 쌀국수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거부감은 없으면서도 새로운 맛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에머이 대표 메뉴인 베트남 현지식 생면 쌀국수 [사진 = 김지혜 에디터]
-베트남 현지 느낌을 어떻게 구현해냈나.▷베트남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을 다 가봤는데 이렇다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호치민에서 허름하고 지저분한 어떤 가게를 발견했다. 배가 고파서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그집은 뭔가 달랐다. 불쇼를 하듯이 불고기에 불맛을 더해 고명으로 올려줬고 국물도 진하고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요리하던 친구에게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6개월 뒤 그 친구가 한국에 왔고 권 이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베트남 맛 내기에 돌입했다.
우리는 얇지만 탱글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100% 쌀가루 반죽을 사용한다. 매일 신선한 생면을 뽑아 쓰기 위해 2년 동안 고심해 자체적으로 기계를 개발했다. 이 기계는 얼마 전 특허도 받았다. 24시간 사골을 끓여 육수에서는 진한 맛이 난다. 인테리어 역시 베트남 현지의 허름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식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천 같은 도자기 도시인 밧땅에서 공수한다. 식기에 그려진 화려한 색감과 문양으로 베트남 전통의 느낌을 살렸다.
-면 뽑는 기계 개발에만 2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사업 초기 자본은 어떻게 충당했나.
▷봉추찜닭 점포도 몇 개 갖고 있고 재료는 쌀가루 밖에 안드는 데다 기계는 조금씩 손봐서 고치면 됐다. 그렇게까지 돈 많이 안 들었다. 권 이사가 고생 많이 했을 거다.
김명상 에머이 대표 [사진 = 윤해리 인턴기자]
-사업 초기 자본이 부족했던 게 아닌 거 같다. 보통 1호점을 낼 때는 홍보차원에서라도 목 좋은 곳을 선택하지 않나. 그런데 종로본점은 너무 구석진 골목에 있어서 못 찾을 뻔했다.(에머이 본사 1층에 종로본점이 있다.)▷이곳에 권리금이 없다고 해서 들어왔다. 또 에머이를 만들 때부터 가맹사업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입지와 상관 없이 아이템으로만 승부해보고 싶었다. 가게가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안 오는지 테스트해보자는 의미였다.
워낙 눈에 안 띄는 곳에 있다보니 종로본점 오픈 첫날엔 5명이 들어왔다. 10만원도 못 팔았다. 그런데 와본 고객들이 지인들을 데리고 오더니 10명, 20명, 40명, 100명 이런 식으로 매일 손님이 배로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면 고향의 맛이 난다고 베트남 대사관 분들도 단골이 됐다.
에머이 음식들 [사진 = 김지혜 에디터]
-'미쉐린 가이드 2018'에 이름이 올랐을 땐 기분이 어땠나.▷미쉐린 조사관들이 에머이를 '하노이식 쌀국수 특유의 잘게 썰어 낸 허브의 진한 향과 감칠맛 나는 육수는 현지 길거리에서 먹는 그 맛을 연상시킨다'라고 평가했다. 에머이를 만들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내 의도가 에머이에 잘 반영됐고 그걸 전문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에머이 종로본점 내부 모습 [사진 = 김지혜 에디터]
-'생면을 사용한 베트남 현지식 쌀국수'를 표방한 미투 브랜드가 속속 나오고 있다.▷파이가 커진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따라하더라도 잘 따라했으면 좋겠다. 후속으로 생긴 브랜드들이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게 되고 다같이 하락세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설프게 팽창되기보단 내실을 갖추면서 커갔으면 좋겠다. 기존 쌀국수 시장과는 또다른 '생면포(Pho) 시장'이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명상 에머이 대표 [사진 = 김지혜 에디터]
-어떻게 요식업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궁금하다.▷95년 2월 안동에서 상경해 직장생활을 했었다. 재미없고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30살이 되던 해 봉추찜닭을 차렸다. 돈은 아는 형들한테 꿨다. 돈을 잘 빌리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웃음) 원래 20대부터 안동찜닭이 맛있는데 서울에 없으니 장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다.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 어렸을 때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지 음식은 못해도 미각은 발달한 편이다.
김명상 에머이 대표 [사진 = 김지혜 에디터]
-음식에 대한 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적은 없나.▷없다.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정말 싫어했다. 친구들은 숙제를 하려고 며칠동안 고생하는데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다가 딱 하루 눈 질끈 감고 매 맞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어차피 그 친구들도 어설프게 숙제해서 맞나, 나처럼 자유롭게 있다가 맞나 마찬가진데….(웃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독특하다고 하더라. 직원들도 나에게 '똑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업가로서 본인의 촉이 좋다고 생각하나.
▷대중적인 음식군이라 이질감이 없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 뿐이다. 여행·출장 등을 통해 전세계 80여개국을 돌아다녀 봤는데 사람들의 입맛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맛있다고 하는 음식은 누가 먹어도 맛있다.
요리 실력이 훌륭하신 어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음식에 대한 감각, 돈 빌리는 능력이 좋은 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다.
김명상 에머이 대표 [사진 = 김지혜 에디터]
-향후 구상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나 계획이 있다면 귀뜸해달라.▷우선 에머이를 더 탄탄하게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 음식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느낄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각종 베트남 음식을 맛 볼 수 있고 실제 현지에 와 있는 것처럼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는 그런 곳 말이다. 거기서 난 베트남 전통 의복과 삿갓을 착용하고 열대과일을 팔고 싶다.(웃음)
[김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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