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청원에 헌재 주목…재판관 9명 중 6명 "손질 필요"
'기승전청' 다양한 '국민청원' 열기 후끈
낙태죄 폐지에 대한 국민 청원이 뜨겁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논란이 돼 왔습니다.
청와대가 26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통해 현황 파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위헌심판을 통해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언급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낙태죄 위헌법률심판 추이에 관심이 쏠립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20만명이 넘어선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변하면서 지난 2010년을 끝으로 중단한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내년에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8년만에 실시되는 것으로 정확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안을 찾자는 취지입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 입장을 드러내기보다는 정확한 실태조사에 입각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와 함께 조 수석은 "헌재도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을 다루고 있어 새로운 공론장이 열리고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낙태죄 조항은 생명을 다루는 사안인 만큼 그 존폐를 따지려면 실태조사뿐 아니라 법적 평가가 수반돼야 하는데, 낙태죄 조항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등 사법적 평가에 대해서는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조 수석은 답변에서 형법상 '낙태'라는 용어의 부정적 함의를 고려해 낙태 대신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이슈가 예민한 주제라고 전제하면서 헌재의 지난 2012년 합헌결정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임신중절과 관련한 법 제도 현황과 그간의 논의를 비롯해 2012년 당시 합헌결정이 내려질 때 합헌과 위헌 주장의 근거도 설명했습니다.
이번 청원과 조 수석의 답변에서 보이듯 낙태·임신중절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가장 최근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헌재의 2012년 판단이 내려진 지 어느새 5년이 흘렀고, 그동안 사회적인 인식 변화나 학계의 추가 논의 등 변화 요인이 있었다는 점에서 조 수석의 답변은 사회 변화를 충분히 고려해 정책적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다만 현행법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는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의 판정 결과를 지켜봐야 하며 그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헌재는 지난 2월 낙태죄 조항인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해 심리 중입니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 1항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입니. 270조 1항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입니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것은 2012년 8월 '동의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후 5년 만입니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며 처벌 규정을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도 심리에 참여한 8명의 재판관 중 절반인 4명이 위헌 의견을 낼 정도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위헌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결정이 내려진 사건이었습니다.
최근 유남석 신임 헌법재판관과 이진성 신임 헌재소장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헌재가 완전체인 '9인 재판관 체제'를 갖춘 점은 낙태죄 위헌심판 심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합니다.
특히 9명의 재판관 중 6명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낙태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헌재가 기존 결정을 뒤집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법조계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임신중절 음성화나 여성의 생명권 문제 등 2012년에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사안들이 이번 헌재 심리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 추이 등도 고려할 만한 사항일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번 답변은 지난 9월25일 '소년법 개정' 국민청원에 이어 두 번 째로, 30일 안에 20만 명의 국민이 청원하면 정부가 답변한다는 기준에 따른 조치입니다. 이 기준에 맞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4건으로, 참여율이 예상보다 높다는 평가입니다.
청와대는 JSA 북한군 귀순으로 공론화돼 역시 20만 명 이상 청원이 올라온 권역외상센터 지원에 대해서도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청원이 20만 명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관심이 큰 사안에 대해는 적극적으로 답변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요청이 청와대 청원에 접수되면서 '기승전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청와대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서버 다운 피해자들이 청와대에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을 제기했으며 평창 롱패딩 품절 이후 재생산 요구가 청와대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청와대의 시도는 여론 파악과 소통 강화, 직접 민주주의 확대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정책화를 넘어서 조두순 출소 반대 등 사법부 영역을 침해하거나, 일베 폐지와 더불어민주당 해체 등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청원에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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