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22일 '평창롱패딩' 판매를 재개한다고 밝히면서 가장 많은 수량이 풀린다고 알려진 잠실점 에비뉴엘 앞은 수천명이 몰려 말그대로 '대란'이었다. 전날부터 밤샘 대기를 한 인원도 수백명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아이폰 같은 IT 신제품이 나올 때면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지난 2015년 SPA브랜드 H&M이 명품브랜드 발망과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선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장 앞은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소비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잠실점 에비뉴엘 대기자 명단에 1등으로 이름을 올린 이선우 씨(32)와 이씨의 어머니. [사진 =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평창롱패딩은 평창올림픽 굿즈로써 의미를 가지고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잠실점 에비뉴엘 대기자 명단에 1등으로 이름을 올린 이선우 씨(32)는 "올림픽 한정판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패딩을 구매하고 싶을 것"이라며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전날 오후 7시에 경기도 일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평창롱패딩 선착순 조기 마감을 알리는 푯말. [사진 =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하지만 누리꾼들은 디자인·가격·상징성 등 여러 면을 따져 봐도 평창롱패딩의 열기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과열되는 양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직장인 김유현 씨(27)는 "요즘 롱패딩이 유행이라고는 하나 디자인이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고 가성비가 좋다지만 밤을 지새우며 기다리거나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웃돈을 얹어 살 만큼인지는 모르겠다"고 의견을 밝혔다.평창롱패딩을 매대에 진열하는 관계자들. [사진 =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이토록 평창롱패딩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유로 '집단 정체감(Group Identity)'을 꼽았다.최항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매우 의식한다는 것과 타인이 하는 건 따라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흐름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성향은 교육·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걸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창롱패딩 열풍 역시 스스로 제품에 매력을 느껴 구매한다기 보단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식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 국민들은 '타인'을 본인의 행동 잣대로 삼을까.
최 교수는 "강한 공동체 성향을 갖고 있어 남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크고 경쟁심리에 익숙하다보니 희소한 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평창롱패딩을 사기 위해 모인 수천명의 소비자들로 22일 잠실점 에비뉴엘은 북새통을 이뤘다. [사진 =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속감·집단 정체감을 원하는 경향은 전쟁 가능성, 청년 취업난 등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곽 교수는 "어딘가에 소속이 돼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면서 "나 혼자만 놓고 보면 매우 작은 존재지만 집단에 속하면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마 이 패딩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은 힘들기 보단 즐거워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국주의' 역시 평창롱패딩 사태를 이끄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그는 "입장권은 일회성인데다 매우 비싸지만 평창롱패딩은 가성비가 좋고 기념품으로 남길 수 있다"라며 "요즘 같은 불경기에 평창롱패딩 구입을 통해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고 싶은 심리"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구매 행위를 통해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얻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과도한 집착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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