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급 지체장애인 안 모씨(69)는 지난 3월 자신이 충북 지역 내 H장애인골프클럽의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씨는 지인인 A씨(61)의 소개로 2년 전 한차례 골프모임에 참여한 것이 전부다. 충청북도장애인체육회에 A씨가 등록한 14명의 등록 회원 중 안씨를 포함한 12명은 가입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해당 클럽은 충청북도장애인체육회에 '장애인생활체육교실' 교부금 명목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5년간 1000여만원을 받아냈다.
친구 딸을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장애인으로 등록돼 각종 정부지원 혜택을 받으면서 외제차를 몰고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나 장애인 복지지원에 대한 재점검 여론이 커진 가운데 장애인 체육 지원금도 곳곳서 '눈먼 돈'으로 전락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또 장애인에게 지원하는 사회바우처 지원도 주먹구구로 운용된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일부 비양심적 단체·개인들의 유용행위로 선의의 지원마저 '찬바람'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청주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 A씨 등을 허위로 체육클럽을 등록한 뒤 교부금을 착복한 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장애인 단체의 체육활동 지원금 유용의혹이 비단 H클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2년 전 충청지역 한 장애인운동 협회 협회장에 취임 했던 김모씨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년에 2000만원 가량이 지원금 명목으로 들어오는 통장이 있었는데 취임 후 개설된 통장과 도장을 내놓으라는 압박이 (나를) 회장자리에 추천했던 B씨로부터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내가 이를 거부하자 (H클럽 교부금 유용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A씨 등 일부 회원들이 B씨 등과 공모해 지체 장애인들에게 서명을 받아 나에 대한 탄원서를 조작해 상위 단체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를 주도했던 A씨는 탄원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청주지법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결국 바지협회장으로 앉히고 기부금을 유용할 목적이었던 건데 말을 듣지 않다 보니 미운 털이 박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앞세워 정부 등 각종 지원금을 유용하고 있는 건 체육활동 지원금 뿐만 아니다. 장애인 아동을 돌보는 도우미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 바우처'도 구멍이 숭숭 뚫려있긴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작성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장애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 등록한 후 실제로는 본인 아이만 돌보면서 서로 상대방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허위활동 보고 후 정부지원금을 6000만원 타냈다가 결국 사회보장정보원 현장점검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한 장애인활동보조인은 장애인 보호자들 중에 등·하교 서비스만 지원받아 매월 바우처가 남는 이용자들에게 접근해 바우처를 모두 자신에게 결제해주면 월급의 일부를 '리베이트'로 준다는 제안을 해 정부지원금을 4000만원을 착복한 사실도 발각됐다.
문제는 장애인 복지기금이 새어나가는데도 감시망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H골프클럽 교부금 지원을 담당했던 C공무원은 "구비 서류가 완벽해 교부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수많은 클럽에 회원 명단과 활동을 일일이 확인하기 힘든데 의사소통이나 정상생활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클럽을 만든 관리자를 믿고 돈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인순 의원은 "사회서비스바우처 부정수급이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부정의심 결제가 가장 많은 것이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다 보면 결국 신뢰기반이 무너지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장애인 단체 지원이 더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생활체육 기금으로 배정된 예산은 약 78억원으로 2015년의 88억원에 비해 오히려 줄어 들었다.
오광진 한국복지대 교수는 "장애인 생활체육에 지원되는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지원금이 흘러나가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선의에 대한 신뢰기반도 무너지는 만큼 보다 투명한 예산관리와 집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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