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같은 도쿄, 부산 같은 오사카가 지겹다면 야마구치에 주목하자. 야마구치는 일본 드라마에나 등장할 듯한 조용한 소도시로 늦여름 '힐링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하다. 구석구석 자리잡은 한적한 풍경은 여행객의 마음을 적시며 한국에 놓고 온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지게 만든다.
아키요시다이 전경
◆ 비에 젖어드는 풍경…야마구치 미네市일본 혼슈 야마구치현(縣)의 미네시(市)에선 일본 최대 규모의 카르스트 지대인 아키요시다이를 꼭 들려야한다. 대초원과 하얀 석회암이 절묘하게 섞였고,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넓게 펼쳐진 아키요시다이는 봄과 겨울이 각각 초록과 설경이 멋들어져 야마구치의 대표적 관광지로 유명하다.
절경은 요즘 같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서 펼쳐진다. 비가 내려 안개가 낮게 깔리면 신비로운 모습이 튀어나온다. 윤곽만 들어나는 먼 구릉과 낮은 나무들이 깔린 초원이 눈을 사로잡는다. 드넓은 초원을 감상할 수 있는 360도 전망대가 마련돼 있으며, 욕심을 낸다면 자전거를 타고 비 오는 풍경 속을 달려볼 수도 있다. 자전거는 지난해 문을 연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빌려준다. 이 센터는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아키요시다이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이 지역 최대 자랑인 아키요시동굴이 관광객들을 기다린다. 국가 특별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회암 동굴로 1㎞가량(총 길이 8.9㎞)이 관광 코스로 개방됐다. 연중 기온이 약 17도로 유지돼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느껴진다. 동굴 내에는 석회암과 동굴 내 계곡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여럿이다. '100장의 접시'와 '황금 기둥' 등이 주요 볼거리로 꼽히며 동굴 안을 흘러내리는 계곡도 이목을 집중한다.
◆ 역사 탐방에 관심 있다면 시모노세키市
시모노세키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곳이다. 규슈와 혼슈를 흐르는 간몬해협에 위치해 북방국가와 교류하는 길목으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 본토로 진입하기 위해선 '대문'이나 마찬가지인 시모노세키를 통과해야 했고 활발한 교류는 도시가 교육과 상업의 요충지로 성장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시모노세키하면 떠오르는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거대 항구로 바뀐 시모노세키항을 앞에 두고 조선통신사의 상륙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일행이 도착해 닻을 내린 지점이다. 또 멀지 않은 곳에 조선통신사 일행이 숙소로 썼던 아카마신궁이 위치한다. 아카마신궁에서 내려보면 시모노세키에 들어오는 배들을 넓은 바다와 함께 내려볼 수 있다.야마구치현은 우리 근대사에도 영향을 준 지역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산업혁명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23곳 중 5곳이 야마구치현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사설 학당 쇼카손주쿠는 침략의 뿌리가 된 '정한론'의 사상적 기반을 만든 요시다 쇼인을 배출한 사설 학당이다. 시모노세키와 맞닿은 하기시(市)에 있다. 일본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아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일본 제국주의 팽창을 주창해 역사적 논란이 됐다.
성희호
◆ 페리로 떠나는 신선한 경험자연과 역사 어울러진 야마구치현을 방문하려면 부산항에서 페리를 타는 방법이 있다. 가까운 후쿠오카에 비해서 여행 수요가 적어 비행기 직항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부관페리 등이 부산항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부산까지 이동해 승선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배 여행은 비행기와 다른 재미가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수속마감은 오후 6시 50분, 출항은 9시다. 선박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때우고 흔들리는 바다를 보면 여행의 미묘한 긴장감이 더해진다. 대욕탕에서 몸을 풀고 내려와 갑판 위에서 일본 맥주를 한 캔 따는 것도 묘미다. 시모노세끼를 노선을 왕복하는 부관페리의 성희호와 하마유호는 내부에 노래방, 면세점, 게임시설 등 즐길거리도 보유했다.
[고고트레져 = 이가희 기자 / 사진 = 박현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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