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운동으로 인연을 맺었던 두 소녀가 이제 머리 희끗한 할머니로 다시 만나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손효숙 할머니(82)는 지난 6월 14일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보훈시설 '보훈원' 복도에서 꿈에서도 잊지 못하며 그리워했던 김봉춘 할머니(76)를 만났다. 수십년간 소식이 끊기며 속앓이를 했던 두 할머니는 한 눈에 알아보고 "그동안 어찌 지냈소. 건강은 괜찮나요"라며 그동안 이어가지 못했던 정(情)을 다시 나눴다.
두 할머니의 인연은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손 할머니의 남편은 독립투사 최문식(1914·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선생이고 김 할머니의 부모는 부부 독립운동가였던 김영준(1900·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장경숙(1904·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선생이다. 최문식 선생이 1930년대 상하이로 건너간 뒤 먼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치고 있던 김영준 선생 내외를 동지로 만나게 된 것. 이후 세명의 독립 투사는 10여년간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후 갖은 고초를 다 이겨내며 광복을 맞았고 최문식 선생은 1950년 당시 15세였던 손 할머니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광복 직후 귀국한 김영준 선생 내외는 상하이에서 낳은 딸인 김 할머니와 서울 청파동 독립군 임시거처에 자리를 잡았다. 김영준 선생 내외는 이전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를 수소문한 끝에 서울 인근에서 어렵게 살고 있던 최문식 선생과 재회했다. 당시 최문식 선생과 손할머니는 사글셋 방에서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에 김영준 선생 내외는 최문식 선생과 손 할머니가 청파동 거처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때부터 손 할머니와 김 할머니는 이웃이 됐고 우정을 꽃을 피웠다. 두 할머니는 김장 품앗이나 삯바느질까지 서로을 의지하며 친자매나 다름없이 지냈다. 그리고 3공화국 시절 손 할머니 내외가 청파동 거처를 떠났고 김 할머니도 결혼하면서 소식이 끊겼다. 그 사이 손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지난 2011년 10월 보훈원에 입소했다. 김 할머니도 아들의 이민으로 보훈원을 찾으면서 두 할머니의 극적인 재회가 이뤄진 것이다.
보훈원측 배려로 두 할머니는 현재 한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보다 진한 우정과 독립운동으로 맺어진 두 할머니는 여생을 이곳에서 함께 할 계획이다.
손 할머니는 "긴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니 정말 필연인 같다"며 "이젠 세상 떠날 때까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 할머니도 "어려운 때 동반자가 돼 준 언니와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이곳이 천국 같고 행복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수원 = 홍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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