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닭 사지마세요'라고 떠드니 일반 냉동닭도 파리가 날립니다"
6일 오전 9시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전통시장인 함덕5일장. 시장 한켠에 1t트럭에 달걀과 아이스박스에 냉동닭을 판매하는 고모(75)씨는 진열대 앞을 지나가는 손님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닭농장을 운영하는 고씨는 함덕5일장을 비롯해 세화5일장 등 제주지역 5일장을 지난 10년간 돌면서 장사를 해왔다. 함덕장에는 살아있는 닭을 판매하는 곳은 없고 고씨가 유일하게 달걀과 닭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날 비내리는 궂은 날씨 탓인지 장을 찾는 인파도 적었지만 고씨의 가판대에 놓인 달걀을 간혹 사가는 사람은 있어도 닭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군산에서 제주로 들여온 AI에 걸린 오골계가 인근 제주 오일장과 서귀포 오일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나오면서 다른 오일장도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했다.
고씨는 "보통 오전 7시에 장에 나오는 데 현재까지 닭은 한마리도 팔지 못했다"며 "보통 10마리에서 20마리 정도는 팔고 가는데 AI여파가 아무래도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는 "기관이나 언론에서 ‘생닭 사지마'라고 주의를 준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생닭의 개념을 살아있는 닭이 아닌 굽거나 삶지 않은 닭으로 아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고씨는 11시가 다 돼서야 가판대를 찾은 한 30대 중국인 여성에게 가격을 깎아주고 냉동닭 한 마리를 겨우 팔았다.
같은날 정오 제주 동부 중산간 지역에 자리한 조천읍 교래리 토종닭 마을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곳은 1970년대부터 토종닭 사육농가가 늘면서 토종닭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인근에 관광지와 펜션이 들어서면서 토종닭 전문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제주도가 지난 2009년 10월 이 일대를 토종닭 유통지구로 지정했다.
마을입구에는 ‘토종닭 유통특구 교래 삼다수 마을'이란 대형 아치가 크게 들어서 있고, 마을을 가로질러 놓인 비자림로 주변에 토종닭 전문음식점 10여곳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임에도 식당을 지나치는 차량만 있을 뿐 음식점 내 테이블은 군데군데가 비어 있었다. 매스컴과 입소문으로 토종 닭샤브샤브와 백숙이 더욱 유명해지면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으나 지금은 AI 여파로 큰 위기가 찾아왔다.
특구내에서 토종닭 전문음식점을 운영하는 방모(53)씨는 "AI로 단체손님 예약이 전부 취소됐다. 오늘처럼 공휴일에는 예전 같으면 120인 실이 꽉찼는데 지금은 보다시피 몇 테이블 없다"며 "매출이 3분의 2로 줄면서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걱정했다.
청정지역 제주 가금류 농가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가금류 농장을 비롯해 판매상, 음식점 등이 쇼크에 빠졌다. 제주 전체 가금류 농장은 182농가 183만마리를 사육해 전국 가금류 사육 비율의 1%에 불과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토종닭과 오골계 등 닭류는 별미로 인식되면서 인기있는 향토음식이었지만 지금은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재래시장의 삼계탕 음식점이나 닭전문 판매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번 AI 감염농장은 오골계와 토종닭 농장이지만 일반 양계를 취급하는 이곳도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탓인지 손님들의 발길이 뜸했다.
전날인 5일 오후 6시30분 제주도 최대 상설재래시장인 제주 동문시장의 한 생닭전문 판매점은 기자가 1시간이 지나도록 지켜본 결과 한명의 손님도 찾지 않았다. 이 시간대 동문시장은 최대 인파가 모이는 피크타임으로 수산물부터 농·축산물 등이 즐비해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가게를 아예 쳐다보지 않고 지나쳤다. 이 가게 주인은 "현재까지 판매 영향은 크게 없지만 손님들이 AI를 닭 전체로 오해하는 게 문제다"며 "일반 양계는 AI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손님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시장에서 삼계탕을 팔아온 한 식당에는 저녁시간대임에도 식당 내부 6개 테이블은 텅비어 있었다. 이 식당주인은 "아직은 눈에 띄게 판매가 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AI사태가 장기화 되면) 닭들이 살처분돼 가격이 크게 오를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관광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사드 영향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급감했으나 최근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현재 제주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은 총 609만9670명으로 내국인 538만859명, 외국인 71만8811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준으로 총 616만3509명이 제주를 찾았으며 이중 내국인이 488만3118명, 외국인이 128만0391명을 차지했다. 지난해 하반기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단체관광객수가 절반으로 급감한 반면 내국인 관광객들이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회복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AI 확진으로 청정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되면서 관광 활성화에 새로운 걸림돌로 떠오른 것이다.
김남진 제주 관광협회 부본부장은 "현재까지 사드 영향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수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AI 사태는 청정지역 이미지에 대한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당장 관광객이 급감하는 등 영향이 오진 않고 있으나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향후 관광 관련 기관들과 대책회의를 통해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양재혁 외식업협회 제주도지회 사무국장은 "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닭고기를 취급하는 곳은 타격을 받지 않겠냐"며 "외식업 전체가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AI 사태가 장기화 된다면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날 오전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해당 농가의 반경 3km 이내 가금 사육농장 21농가 11만9581마리를 이날부터 선제적으로 예방적 살처분 키로 했다. 제주도는 지난 5일까지 AI 발생 농가 인근의 14농가 2만452마리를 예방살처분한 바 있다.
[제주 = 최승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