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판 부식이 수 백개가 발견됐는데 용접 땜빵 처리만 하고 재가동을 서두르고 있어요. 이게 안전불감증 아니고 뭔가요."(김인숙 부산 시민환경운동 간사)
"큰 사고 전에는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대형 사고 목전에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한빛 1·2호기, 한울 1호기, 고리 3호기 등 원전 네 곳에서 격납건물 내 철판 부식이 발견되면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다른 원전까지 전면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힌 직후인 27~28일 이틀 연속 핵연료 다발 추락 사고(월성 4호기)와 냉각수 누설 사고(고리 4호기)가 발생하자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30년 이상 된 노후원전에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의 총체적인 노후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냉각재 누설 사고는 2008년 6월 고리 4호기와 '쌍둥이' 원전인 고리 3호기에서도 발생했다. 당시 686ℓ의 냉각재가 누설됐고, 원전 당국이 유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5년 내에 전수검사와 설비보수를 마치도록 했지만 동일 유형의 다른 원전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이번에 고리 3호기에서 누설된 냉각재는 306ℓ로 알려졌다.
사용후 핵연료 교체과정에서 추락사고는 2009년 3월 월성 1호기에서도 발생했다. 이송장비 오작동 또는 작동 실수로 인해 핵연료 다발이 파손돼 2개의 연료봉이 연료방출실 바닥과 수조로 각각 떨어졌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1980년대 가동을 시작해 가동연수 30년이 넘은 경수로 원전들과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에서 안전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리 4호기 냉각수 누설은 중대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즉각 가동 중단을 안 하고 이틀 뒤에야 수동 정지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다. 한수원 측은 "초기 누설량이 가동 정지 수준이 아니었고, 기준을 넘어선 뒤에는 매뉴얼에 따라 수동 정지했다"고 밝혔지만 시민·환경단체는 원자로와 맞붙어 있는 1차 계통에서 이상이 발생했을 경우 대참사를 막기 위해 즉각 원전 가동을 중단하도록 매뉴얼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 재난을 정면으로 다룬다. 영화 속 '한별 원전'은 규모 6.1 지진으로 붕괴해 냉각장치가 멈춰서면서 원자로 중심부가 녹는 중대 사고(노심 용융)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수소의 압력(5~6기압)을 이기지 못한 원전 돔이 폭발하면서 인근 마을을 덮치는 시나리오다.
최근 잇따른 원전 사고를 보면서 영화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많이 과장됐다. 원전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전 격납건물은 두께 1.2m 이상 특수 철근 콘크리트도 만들어져 10기압까지 견딜 수 있다. 수소 제거 장치가 가동되고 10기압까지 견딜 수 있기 때문에 5~6기압 수준에서는 돔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규모 6.1 지진에 냉각수가 새면서 노심 용융이 발생하는 것도 극적 연출이란 지적이다. 국내 원전은 규모 6.5~7.0 수준 내진 설계를 갖추고 있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규모 9.0 지진에 가동을 즉각 중단했지만 이후 닥친 쓰나미로 인해 발전시설이 침수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겨 벌어진 참사였다.
또한 국내 원전의 재난 대응 체계는 세계 상위권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세계원전사업자협회가 실시한 안전성능 종합지수에서 한수원은 88점을 받아 미국 엑슬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노후 원전 가동률이 높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매뉴얼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은 내진 설계, 재난대응 조치, 안전 설비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대응책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응책은 현 시점에서 평가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재만 기자 / 울산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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