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민들은 이에 승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다"
지난 수개월간 이어진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번갈아가며 참여해온 이가 있다. 태극기 집회에서 그는 태극기를 들기를 거부했고, 촛불 집회에서는 양초를 손에 쥐지 않았다. 광장에서 '폭동' '혁명' '빨갱이' '좀비'같은 저주의 말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건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라는 것. 그래서 시작한 것이 '승복하기 국민운동'이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려놓든 이에 승복하자는 메시지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를 하루 앞둔 10일. 배영후 배달겨레전국연대연합 대표(58·사진)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를 하면서도 연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선교사 활동도 하고 있는 배 씨는 "요샌 신학대학서 공부를 하지 않은 시간 외에는 스마트 폰으로 성명서를 여기저기 전달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했다. 배씨는 지난해 2월 동묘 고시원 화재사건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의인'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배달겨례전국대연합은 '승복하기 국민운동'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약 한달 전 그가 결성한 단체다. 절친한 사이인 홍정식 활빈단 대표 등 평소 배 씨와 평소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했던 160여명 사람들이 배 대표와 뜻을 함께 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국민행동분부, 활빈단, 녹색환경 감시단 등 그가 속한 시민단체만 해도 10여개. 그렇다보니 배 대표가 들어와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은 300여개에 달한다. 배 씨는 지난 한달간 배달겨례전국대연합 이름으로 낸 성명서를 이 단체 톡방들에 쉴 새 없이, 반복적으로 게재해왔다. 배 씨는 성명서를 통해 "국회, 청와대, 진보, 보수, 친박 세력 모두 (헌재의 선고에) 승복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라며 "헌재의 탄핵판결에 승복해 국민화합, 국민통합, 국가 경제, 국가위상과 평화통일 앞당기자"라고 촉구했다.
배씨는 회원들과 함께 오는 11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과 태극기 집회 주 무대인 시청 서울광장 사이 '중간지대'에서 '중재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부터 촛불과 태극기 양쪽 집회를 오가며 민심을 관찰했던 배 씨는 "태극기든 촛불이든 모두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며 "이젠 그 애국심으로 하나로 모아 혼란을 뒤로 하고 국가 발전을 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거센 비난과 충돌이 예상되지만 애국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심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태극기와 촛불이 하나가 되면 대한민국은 두려울 게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선의의 뜻으로 시작한 캠페인이지만 배씨는 그간 촛불·태극기 양측으로부터의 거센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일부 카톡방에서는 '정신 차려라', '미쳤냐' 등의 비난을 받았고, 전화를 걸어와 대뜸 욕부터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설득하려는 노력은 욕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개인신상도 털렸다. 일부 태극기 세력으로부터는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수여하는 서울시장상을 받았던 게 빌미가 돼 '좌빨'이라는 비방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국정이 정상화되고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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