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들이 19일 최순실 씨(61·구속기소) 재판의 첫 증인으로 출석해 "청와대가 개별기업 출연을 세세하게 지시하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는 재단 출연은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출연 기업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진술이다. 이날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도 두 재단 등을 통한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58·구속기소)의 공판에서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58)과 이용우 사회본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전경련의 재단 모금 전반을 관리했고, 이 본부장은 이와 관련된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의 재단 설립 지시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계획이었고, 청와대가 실무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단금액과 분야, 출연할 기업, 사무실 위치, 재단 명칭, 이사진 운영방식까지 청와대 지시에 의해 세세하게 정해졌다"고 말했다. 또 "개별 기업들로부터 '얘기가 다 됐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출연 요청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99년 전경련에 입사한 후 청와대 주도로 재단을 만든 적은 전례가 없다"며 "대통령이 6~7대 그룹 회장들과 독대한다는 것이나 (재단 출연을 독려하는) 내용 대화를 나눴다는 것도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하는 일이니 이렇게 (급박하게) 되나 보다 생각했고,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씨측은 "청와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했을 뿐, 개별기업 출연 요청 등 실무는 전경련에서 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예를들어 재단 사무실을 강남에 있는 단독건물 중 개인주택으로 보이는 곳으로 구하라고 해서 '그런 곳을 어떻게 찾냐'고 했더니 청와대에서 '여기'라며 찍어줬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은 "안 전 수석이 재단기금 규모를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늘리라고 지시했고, 추가된 금액을 낼 만한 기업을 찾는데 안 전 수석 본인도 돕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안 전 수석이 적자에 허덕이는 현대중공업까지 넣으라는 지시를 했다고도 말했다. 이는 이 부회장이 먼저 기금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안 전 수석 측 주장과 배치된다.
[이현정 기자 /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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