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계란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연말 소외 이웃들의 밥상을 책임져온 ‘사랑의 계란 기부’ 마저 뚝 끊겼다.
지난 4년간 매달 1만 개씩 500만개에 달하는 계란 기부를 해온 중견 축산업체인 서울사료는 최근 AI로 인해 계란 가격이 폭등하고 물건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지난달부터 기부 행사를 전면 중단했다.
23일 서울사료 관계자는 “12월들어 AI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방역 활동으로 인해 산란계 농장 방문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AI가 진정될 때 까지는 당분간 사랑의 계란 기부 행사를 진행하기 힘들 것 같다”고 밝혔다. 육계농장 출입 제한과 함께 계란 파동으로 치솟은 가격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당초 계란기부를 시작한 것은 사료의 주요 거래처인 양계농장의 달걀 판매도 촉진하는 동시에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추진하면서 부터다.
닭과 오리, 돼지 등 가축 사료를 생산하는 서울사료는 전국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푸드뱅크’를 통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 어려운 이웃들을 대상으로 계란을 기부하는 ‘큰 손’ 이었다. 이 회사가 지원하는 계란과 농가에서 기부하는 우유는 소외 계층의 밥상에서 단백질 등 주요 영양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서울사료가 계란 기부를 중단하면서 푸드뱅크 등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식품을 위탁받아 지원하는 복지단체들은 계란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푸드뱅크 관계자는 “AI 발생 이후 계란이나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식재료에 대한 공급이 끊기면서 불우 이웃들의 밥상이 빈약해지는 게 눈에 보여 마음이 좋지 않다”며 “계란이나 닭고기를 대체할 만한 대안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란값이 급등하면서 학교나 직장인들 급식을 제공하는 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계란 소비자가격은 지난 22일 기준 7037원(10개)으로 이달 초 5603원에 비해 25% 가량 급등했다.
서울 시내 대학가 금식 시설을 담당하는 업체 관계자들은 “이전에도 AI로 계란 가격이 오르기는 했으나 이런 계란 품귀 현상은 처음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대 생협 측은 “계란 (도매) 가격 지난 3~4월에 비해 55% 이상 오르면서 계란이 들어가는 메뉴 급식 단가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아직까지는 계란 공급을 받고 있는데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계란을 주재료로 쓰는 메뉴는 제약이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아워홈, 웰스토리 등 일선 식당에 급식을 공급하는 기업형 업체들도 치솟는 계란 가격에 고민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계란을 빼놓을 수 없는데, 제품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계란이 들어가는 메뉴를 두부나 어묵으로 대체하는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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