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카드 콜센터에서 근무하던 김 모씨(여·26)는 최근 고심끝에 사표를 냈다. 근무한지 1년밖에 안됐지만 하루 평균 200여 건의 고객 전화를 받는 그는 이중 절반 가량이 욕이나 성희롱성 전화라서 견딜 수 없었다. 자신에게 찾아와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고객이나 욕설을 하는 고객은 물론 낯뜨거운 신음소리로 가득찬 성희롱을 듣는건 일상이다. 활발한 성격이 점차 대인기피성으로 변해가면서 공황장애 증세까지 보였던 김씨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
콜센터 진상고객들의 ‘갑질’은 악명높다.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는 것부터 시작해 공공연한 성희롱을 하는 유형, 부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유형, 상품권을 요구하는 유형까지 각양각색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공개한 ‘콜센터 근무환경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근무자의 약 93.3%가 근무 도중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폭력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반말이 59.3%로 가장 많았다.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기(58.2%), 막무가내로 우기기(55.8%), 욕설 및 폭언(51.5%), 고성(38.6%), 비하 및 인격모독성 발언(38.5%), 말꼬리 잡기(32.6%), 협박(17.6%), 성희롱(16.4%)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콜센터 근무자는 언어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4%는 언어폭력에 노출되더라도 참고 넘긴다고 답했다. 상사·동료·전담부서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17.5%였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맞대응을 했다는 응답은 6.2%에 불과했다.
일례로 한 보험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게 1시간 40분 동안 욕설을 퍼부은 박 모씨(51)를 경찰에 신고하기까지는 무려 5년이 걸렸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는 2011년부터 5년간 총 154회에 걸쳐 욕설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에게 언어폭력 피해를 당한 상담원은 모두 총 13명이었다.
콜센터 근무자의 스트레스 경감을 위한 장치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폭력 노출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한 상담, 교육 프로그램 등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3.5%만이 ’있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고용 형태가 갑질고객을 사실상 방치한다는 볼멘소리도 흘러나온다.
콜센터 한 관계자는 “아직 많은 기업들이 콜센터 직원들을 소속 직원이 아닌 도급형태로 고용하고 있다”며 “이같은 형태로 일하는 직원들로서는 회사로부터 갑질고객에 대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의 불만 등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도 밟아야 하는 절차가 더 많아 업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언어폭력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상담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한 실정이다. ‘언어폭력 상황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진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8.2%가 ‘진정할 시간 없이 바로 다음 업무로 투입된다’고 답했다. 때문에 콜센터 상담원들의 처우개선 등 또한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블랙 컨슈머 센터’를 운영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업체도 있지만 이같은 근무여건을 갖춘 곳 또한 소수에 불과하다. B금융회사 콜센터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악질적인 성희롱 전화를 하는 고객 리스트를 따로 관리해 남자상담원들로만 구성된 별도의 센터로 넘긴다”며 “경우에 따라 순한 양처럼 갑자기 온순해지는 고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진솔 기자/ 서정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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