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연세대 자연계 논술 시험장을 빠져 나오는 재수생 정 모씨(20)는 울상을 지었다. 작년에는 문제가 너무 어려웠고 올해는 문항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 씨는 “예고도 없이 수학 문제가 작년 2문제에서 올해 3문제로 늘었다”며 “2년 연속 골탕먹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논술시험을 교과서 밖에서 어렵게 내 선행학습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지난 7월 교육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대학 중 한 곳. 하지만 시정명령의 약발이 신통치 않았는지 10월 시험에서는 문항을 늘려 수험생들의 허를 찔렀다.
그러나 연세대는 오히려 교육부로부터 지난 5월 ‘고교 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했다’며 칭찬을 받았고 올해 포함 최근 3년 연속 관련 사업 지원금(16억4000만원)을 받아냈다. 교육부가 똑같은 잣대로 한 번은 상을 주고 또 다른 한 번은 벌을 내린 것이다. 교육 당국이 자가당착에 빠진 사이 대학들은 제멋대로 전형을 바꾸며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12일 매일경제가 최근 3개년(2014~2016년)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명단과 지원 금액을 확인해보니 작년 대학 전형(논술)에서 선행학습을 위반한 대학 12곳 중 8곳이 고교 정상화 기여 대학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연세대 등 이들 8개 대학에 3년간 203억1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3년간 지원금 규모로는 경희대가 64억1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건국대(30억8000만원) 가톨릭대(26억8000만원) 경북대(20억9000만원) 등 순으로 나타났다.
2014년 부터 시작된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논술 등 대학의 입학전형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바람직한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을 선정·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는 학생·학부모의 대입 부담을 줄여주는 대학 대신 그 반대의 대학에게 지원금을 몰아준 셈이다.
서울 지역 A사립대 교수는 “작년 시험이 고교 과정을 벗어나 선행학습법을 위반한 대학들이 올해 ‘고교 정상화 우수대학’으로 둔갑한 것은 교육부 정책이 얼마나 세밀함과 일관성이 부족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2014년 9월부터 시행됐지만 대학별 고사는 그동안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그 사이 주요 대학들은 변별력 유지 목적으로 대학 과정에서나 볼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 수험생과 학부들의 원성을 샀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작년 논술고사의 선행학습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고 지난 7월 연세대 경북대 울산대 등 12개 대학을 적발했다. 매년 대학별 고사의 선행학습 영향력 평가를 진행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그러나 교육부는 고교 정상화 기여대학 사업에 포함된 대학 상당수가 선행학습금지법 위반 대학으로 나오자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정상화 기여대학 사업에 대학 논술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학생부종합전형 등 각종 전형 간소화 정책이라는 다른 변수도 많이 고려해 선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자가당착을 인정하고 향후 정책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향후 고교 정상화 사업 점수를 낼 때 선행학습 위반 여부를 감점 요인으로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일호 기자 / 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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