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보건의료 전문가 좌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정상 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거 진출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러시아는 한국을 비롯한 의료 강국들이 눈독을 들이는 블루오션이다. 무상진료 때문에 의술과 시설이 낙후돼 있고, 웃돈을 주고라도 값비싼 민영 병원을 찾거나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러시아는 올해초 법제정을 통해 2017년부터 블라디보스톡을 완전히 개방해 극동지역을 교역의 중심지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러시아 정상이 의료교류 활성화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면서 국내 의료기관의 러시아 의료사업 진출과 의료관광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9일 러시아 보건의료 성과 좌담회를 개최해 이번 순방을 계기로 러시아 보건의료 산업 진출을 전망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이영찬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 유경하 이대목동병원장, 조병채 경북대병원장, 황태규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의료원장, 박완수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이민원 보건복지부 해외의료사업지원관(국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이병문 매일경제 의료전문 기자(부장)가 진행했다.
-이달초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순방 주요 성과는?
▶권덕철 실장=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블라디보스톡을 ‘자유무역항’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을 밝히며 한국을 3번, 차관은 올해에만 2차례 방문했다. 그 만큼 한국의 대(對)러시아 투자가 절실하다는 반증이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님의 러시아 방문과 함께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의미가 크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극동지역의 한국 의료기관 진출(복지부·극동개발부) △원격의료 등 ICT기반 의료기술 협력(복지부-러시아 보건부) △캄차트카 주립병원 건설 협력(보건산업진흥원·캄차트카 주정부) △원격시스템을 통한 의료인 교육(보건산업진흥원·태평양국립의과대) 등 4가지 공공부문의 성과가 있었다. 민간분야에서도 △일양약품 국산신약 14호 놀텍의 2억달러 러시아수출계약(일양약품·알팜사) △원격시스템을 통한 현지 의료인력 교육(이대목동병원·태평양국립의과대) △한의약 해외인지도 향상을 위한 동양전통의학 공동연구 및 한의약 홍보관 설치(가천대·태평양국립의과대) △해외환자 유치 및 의료인 연수협력(해운대백병원, 가천대 길병원, 극동러시아 철도청 등) 등 4건의 주요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말 기준 한국을 찾는 러시아 환자는 전체 외국인환자의 3위, 의료비지출 2위를 차지하는 나라로 의료관광의 ‘큰 손’이다. 러시아 정부는 환자유치에만 머물지 말고 러시아에 병원을 지어 양국 의료협력을 확대하자면서 올해 2월 한국의료 면허를 인정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복지부와 연방보건부 장관간의 의견접근이 이뤄졌다. 또한 내달부터 이런 성과들의 실행을 위해 복지부 공무원이 외교관 신분으로 러시아 현지에 상주하게 된다. 특히 이번에는 개별적인 성과가 아니라 병원건설, 의료기기 진출, ICT 분야의 원격의료 진출을 묶는 패키지 성과들이 있었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가야 후방 효과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양약품은 러시아 1위 제약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 했는데?
▶김동연 사장= 몇년 전부터 러시아 1위 제약사 알팜이 우리 신약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고 서로간의 신뢰가 형성됐다. 푸틴 대통령도 관심을 갖고 적극 밀어줬다. 이 때문에 마일스톤을 포함해 2200억원의 위궤양 신약을 수출하게 됐다. 알팜은 연간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러시아 1위 제약회사다. 현지에서 특화된 영업 조직을 갖추고 있고 러시아를 포함해 아르메니아, 벨라루스에 놀텍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가진다. 향후 소염진통제와 항바이러스제 등에 대한 정보도 요구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에 대한 관심도 높다. 슈펙트는 라도티닙 성분이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와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 파킨슨병 발병의 주요 인자인 ‘알파시누클레인’ 응집을 감소시킨 것으로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관심은 주변 CIS(구 소련연방국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어 고무적이다.
-캄차트카 주립병원 건설 프로젝트는 ?
▶이영찬 원장= 러시아의 적극적인 제의가 있었다. 연방정부의 예산과 한국 투자를 유치해 병원을 현대화하려는 것이다. 2020년 완공 예정을 목표로 510병상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캄차트카 주정부는 한국 건설사가 참여할 경우, 러시아 건설사 대비 기간 단축을 예상하고 있다. 주정부 예산으로 10~15년간 상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재 각 지역에 흩어져서 운영되고 있는 주립병원 약 360병상을 폐지하고 해당 병원의 의료진은 앞으로 건립될 주립병원으로 이동해 분산되어있는 기능을 집중할 계획이다. 병상당 3~4억원이 소요되어 총 1500억~2000억원이 투자되는 캄차트카 주립병원을 ‘한국형 모델’로 지을 경우 후방효과가 클 것이다. 병원을 지으면 의료정보시스템과 기술, 의료기기, 교육프로그램, 의약품 등이 종합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병원들은 어떤 협력을 할 계획인가?
▶유경하 병원장= 이대목동병원은 이번에 태평양국립의과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2013년부터 계속 접촉이 있었다. 러시아의 기초의학 수준이 높다. MOU에는 러시아의 높은 기초의학과 한국의 최신 의술을 합쳐 의료기기를 개발하거나 바이오 융합 등을 공동 연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러시아는 여성암 환자의 경우 1~2기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4기는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방사선치료도 한국은 세분화되어 있지만 러시아는 범위가 넓다. 로봇기술 활용도 아직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암치료에서 위험관리프로토콜과 타깃팅 기술을 알고 싶어했다.
이처럼 의약 신기술에 대한 요구가 많아 의료진 6명을 연수하고 심포지엄과 함께 원격 컨퍼런스 시스템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협업할 계획이다. 이대 목동병원은 러시아 의료환경에 대한 컨텍포인트를 갖고 후속으로 여러가지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황태규 의료원장= 해운대 백병원은 러시아 철도청과 환자유치 MOU를 체결했는데 철도청 직원이 5만 5000명, 가족까지 합치면 큰 인력규모다. 그동안 보험회사와 협약을 했는데 질병코드 12만개를 입력하는데만 2~3억원 들어갔다. 현지 의료보험회사와 먼저 계약을 체결했다. 이제 목표는 고정적인 환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5월부터 의료법 개정으로 해외환자 유치가 시작됐는데 블라디보스톡은 한국에서 가까워 매우 성공적이다. 하지만 최근 루블화가치 하락에 따른 러시아환자 감소를 타계하기 위해 국영기업체를 대상으로 보험회사를 공략해 100여곳과 MOU를 맺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통 독일, 이스라엘 쪽으로 많이 가고 있다. 의료가 낙후된 것을 인정하고 장비를 도입했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여전히 치료를 받으러 해외로 나간다. 블라디보스톡은 인구가 많고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서 이젠 세계 최고의 의료진이 여기에 들어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조병채 병원장= 러시아 극동지역내 해외 의료기관 설립에 대한 러시아 정부 측의 의지는 확고했다. 국내 러시아인 의료관광객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어 의사 교류나 현지 병원 컨설팅, 병원건립을 통한 의료수출을 하는 방법으로 발상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같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전문병원 형태로 맞춤형 의료를 공급해야 한다. 러시아 지역에 특히 많은 순환기계 질환에 대한 예방치료, 사후관리 등 현지에서 이미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 할 지라도 한국의료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ICT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첨단 ICT 기술로 넓은 러시아 국토의 동서(東西)체감거리를 줄이고, 원격 협진 시스템의 수출을 통해 한국 의료진으로부터 직접적이고 확실한 컨설팅을 받게 만들어 외국인들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의료 질을 현지에서 확보시켜 준다면 자연스레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 의료환경이 조성될 같다.
-러시아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도 높다고 하는데
▶박완수 부회장= 지난 2014년 8월 유라시아 의학센터가 개설됐고 여기에서 한의약 교육과정 강의가 시작됐다. 한의사 한분이 수련의로 나가계시는데 현지에서 1년 정도 수련을 받으면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내년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한의학 정보관을 구축하고 홍보 자료와 교육 목적용 교재를 만들고 있다. 가천대 한의대와 태평양국립의과대학은 MOU를 맺어 졸업한 임상의를 대상으로 한의약의 기본 이론과 임상지식을 포함한 한의약 교육과정과 전통의학에 대한 한·러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약제제들을 러시아로 들여와 사용할 수 있게 협조를 구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한국에서도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하듯 1차 의료기관을 모델로 시작해서 키워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복지부가 이번 성과를 어떻게 지속해 나갈 것인지 알려달라
▶이민원 국장= 한·러시아 의료협력이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있도록 실무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현재 복지부와 극동개발부가 워킹그룹을 만들어 의료인 면허인정 등을 비롯해 한국 의료기관이 진출했을 때 발생할 문제를 놓고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 러시아 보건부 장관이 러시아 보건의 우선순위가 재활, 요양, 응급, 원격의료, 핵의학, 한의학 등에 있다고 얘기한 만큼, 이런 부분도 앞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워킹그룹 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원격의료에 대한 활성화 방안도 적극 논의될 것이다.
▶이영찬 원장= 러시아가 핵의료 분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이 원자핵분야에서 논문발표수가 세계 최고여서 한국과 협력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유경하 병원장= 이번 러시아방문은 민·관이 같이 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책임감있게 역할을 해서 성공적인 모델을 꼭 만들었으면 한다.
▶황태규 의료원장= 해외진출과 관련해 한국 병원들끼리 너무 경쟁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가적인 타워역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의료만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급됐듯이 교육· IT를 같이 들고 들어가야 효과가 크다.
▶이병문 기자= 정부는 내달 외국인 환자유치와 의료 진출에 관한 5년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좌담회에서 언급됐듯이 현재 외국인 환자 유치는 에이전시 비스니스 모델(Agency Business Model)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한국 의료진과 러시아 현지 환자간의 신뢰구축과 지속 가능한 모델로 나가야 한다. 러시아는 땅 넓이에 비해 인구가 적어 한-러시아 원격화상 상담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 오지 않고도 한국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때 한국의료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진다. 러시아 사람들은 사귀기가 어렵지만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끝까지 간다고 한다. 러시아 속담에 ‘오래된 친구가 새로운 두명의 친구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 러시아는 어떤 나라
러시아는 인구 1억 4400만명, 1인당 국민소득은 약 7800달러이다. 그러나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소득은 약 2만 5000달러에 달한다. 러시아는 소득에 비해 기대수명이 남성 65세, 여성 76세로 낮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러시아에는 4만여명의 의사들이 있지만 러시아국민의 61%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러시아 환자들은 유럽, 미국, 아시아의 의료선진국을 찾아 의료비로 약 14억달러(약 1조 6500억원·2014년 기준)을 지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부유층을 중심으로 비용대비 뛰어난 치료기술, 유럽에서 느낄 수없는 한국인만의 정(情)과 친절함 때문에 한국의료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바람으로 한국 드라마, 영화, K팝 등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의료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높다. 현재 러시아내 한류 동호회원이 26만명이고 최대 검색포털사이트 얀덱스(Yandex)에는 K팝관련 검색어가 약 300만개에 달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한국과 비행기로 2시간, 길어도 3시간거리 밖에 안된다. 이곳은 블라디보스톡 60만명, 하바로프스키 60만명, 야쿠츠크 27만명, 캄차크츠 18만명, 마가단 약 10만명 등 약 5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극동지역은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비교적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다. 고려인은 현재 우즈베키스탄(18만명), 카자흐스탄(10만명), 키르키즈공화국(2만명) 등과 함께 극동지역에 걸쳐 약 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정리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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