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놓으세요. 10m 밖이었잖아요! 저사람도 피고 있는데 왜 저한테만 이러세요!”
1일 오후 2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회사원 김모(28)씨와 흡연 단속 요원들간에 갑작스러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씨는 벌금 고지서를 건네주려는 단속요원들을 밀쳐내며 본인은 “지하철역 출입구 10m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단속요원은 몸싸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바닥에 붙어있는 10m 경계선 표식판을 가리키며 김씨에게 벌금 고지서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단속원 3명이 달라붙어 100m 떨어진 곳까지 서로 몸싸움을 벌이며 이동한 뒤에야 거센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벌금 고지서를 받아갔다.
서울시가 지하철 출입구 금연구역에 대해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한 1일. 서울시내 지하철역 입구 여기저기에서는 단속원들과 흡연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 시종일관 펼쳐졌다.
서울역 11번 출구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다 단속요원들에게 제지를 당한 회사원 김모(25)씨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집중단속기간이 시작됐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따라 세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담배에 불이 붙지 않아 가까스로 단속을 모면했으나, 단속이 본격 시작된 지 모르고 흡연을 하다 단속요원들에게 걸려든 흡연자들이 이따금씩 발생했다. 이날 단속을 당한 회사원 차모(30)씨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집중단속기간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여기가 출구로부터 10m 이내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1일부터 ‘지하철 출입구(10m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이래 4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쳤다. 그리고는 이달부터 이를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흡연 단속을 본격 시작해 9일까지 집중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4개월 간의 홍보·계도기간을 거치는 동안 지하철역 출입구 주변 흡연자들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출입구에는 금연구역 지정을 알리는 홍보용 현수막을 설치했고, 바닥에는 10m 경계선을 알리는 표식판을 부착했다. 흡연자가 많은 일부 지하철역에는 계도요원을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캠페인에 나섰다. 그 결과 금연구역 지정 전 출입구별 시간당 39.9명에 이르던 흡연자 수가 금연구역 지정 후엔 시간당 5.6명으로 8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흡연자들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는 없었다. 또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을 살짝 벗어나 골목 구석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보행자들의 간접흡연을 막자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지난 7월 매일경제가 계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계도요원들과 흡연자 사이에 잦은 실랑이가 벌여지기 일쑤였다. 10m 경계선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집단적으로 흡연을 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 출입구 인근을 벗어나 골목 곳곳으로 들어가는 흡연자들로 인해 골목 상인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된 이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역 출입구 주변 10m 이내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이는 보기 드물었으나, 경계선 바로 밖에서 흡연자들이 집단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얌체 행태’가 종종 포착됐다.
지난 4월 서울시내 지하철역 출입구 중 흡연자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된 구로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가 대표적이었다. 10m 경계선을 조금만 벗어나자 흡연자들이 버리고간 수백개의 담배꽁초가 모여 있었다. 경계선 밖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한 시민은 “10m 밖이지 않냐”며 “흡연장소를 먼저 마련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성을 내기도 했다. 출입구 옆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한 노점상 주인은 “여기서도 많이들 피우지만 바로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말도 못한다”며 “가뜩이나 지저분한 골목이 쓰레기 천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역 4번출구 인근 건물 앞에서 담배꽁초를 청소 중이던 청소부 우 모(64)씨는 “지금 담배공초를 치우고 있지만 나도 흡연자다. 삼성역 주변에 회사가 많은데 회사원들이 점심 먹고 흡연할 공간이 너무 없다. 오늘부터 단속을 한다고 하지만 담배 필 공간이 없다보니 사람들이 여기서 흡연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반 부터 오후 2시까지 삼성역 흡연단속에 나선 강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오늘 단속 건수는 한건 도 없었다”면서도 “10m 밖에서 흡연하시는 분들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 그런 분들에게는 가급적이면 행인 없는 곳에서 피워달라고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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