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알바가 아닌 일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직장, 즉 정규직이 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소속됐던 적도 없고, 당연히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윤이나 씨의 ‘미쓰윤의 알바일지’ 중)
34살 윤이나 씨. 그녀의 첫 인상은 당차고 씩씩했다. 지난 밤 주어진 일들을 끝내기 위해 새벽 3시를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몇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나온 그녀의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 듯 삶에 지친 아르바이트족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건네준 명함이 특이해 잠시 들여다보고 있으니 바로 반응이 온다. “이름이랑 휴대폰 번호랑 그거 모두 다 제가 직접 펜으로 쓴 거예요.”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의 14년간의 알바 경험을 책으로 펴낸 ‘작가’이면서 여전히 여러 가지 알바로 밥벌이를 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보면 분명 정규직을 꿈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심지어 어떤 분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온 청춘의 모델이 되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회적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도 않고 갇힐 이유도 없습니다.”
윤 씨는 대학시절 공부도 꽤나 잘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망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매 학기 성적도 과에서 1~2등을 차지하던 재원이었다. 덕분에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교직 이수의 기회도 왔었다. 성적이 좋으니 장학금은 늘 받을 수 있었고 조기졸업도 했다. 그 시절 윤 씨의 꿈은 방송사 PD가 되는 것이었다.
“3년을 공부했는데도 계속 안 됐어요. 제 기준으로 3년 공부해서 안 되는 일이라면 그건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당시 제 나이는 27살이었는데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스스로를 책임지면서 독립된 직업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였죠.”
그 이후 윤 씨는 초중고생 대상 과외·구성작가, 학술보조 연구원부터 미사리 카페 서버·닭고기 가공 공장 노동자·신약 임상시험 대상자까지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알바 인생의 길을 걸었다. 이중에는 시급 1500원으로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도 있었고 한 번에 1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요? 해야 하는 상황이니깐 한 겁니다. 고생은 했지만 죽을 만큼의 고생은 아니었죠. 눈물이 났지만 자존감을 건드릴 만큼은 아니었죠. 여러 가지 기로에 있을 때 모든 결정은 제 선택이었고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전 그냥 제가 ‘일하는 30대 여성’으로 보이길 원해요. 그것이 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자신은 선택지가 있는 인생이었지만 현재 20대들은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운 마음도 내비쳤다.
“지금의 20대들은 상위 0.1%의 스펙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기성세대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요. 그들에게 왜 좀 더 노력하지 않냐고 말하면 안 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사회가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취업준비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잠시 심각한 이야기를 하던 윤 씨는 남들은 회사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본인은 아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며 다시 까르르 웃는다.
윤 씨는 “평생 한 번도 정기적금이나 보험을 들어본 적 없었어요. 통장 잔고가 0인 상황이 왔을 때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상황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실손보험을 들었어요. 이젠 건강도 챙기며 일 해야죠”라고 말했다. 무엇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되고 싶어하는 그녀의 선택다웠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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