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짐에 따라 시민들의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실외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에어컨 수리기사가 실외기를 정비하다 난간에서 추락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되는가 하면 실외기 과열로 인한 화재사고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한밤 중에도 에어컨 가동량이 늘어나면서 이웃 주민들간 실외기 소음으로 인한 분쟁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련규제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마땅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 4일 대전시 서구의 한 빌라에서 건물 외벽 거치대에 놓여있는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근로자가 추락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빌라 2층에서 사고가 일어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조금이라도 더 고층이었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 만한 순간이었다. 실제 지난 6월 23일에는 서울시 노원구의 한 빌라에서 이보다 단 한 층 높은 3층(약 8.2m)에서 에어컨을 정비하던 수리기사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잇따른 추락사고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관련규정으로 인해 별다른 사고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추락 위험이 있는 곳’에서 근로자가 작업할 시 안전에 관한 여러 가지 의무규정을 두고 있다.
우선 작업 전 외부에 작업발판을 설치하거나, 발판을 탑재하고 있는 이동용 고소작업차를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공사현장도 아닌 주거용 아파트에 작업발판을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업체 측에서 30만 원이 넘는 고소작업차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면서 에어컨을 수리하는 일도 비현실적이다. 작업발판 설치가 불가능할 경우 추락방지망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하다.
몸을 고리가 달린 밧줄과 연결해주는 안전대(안전벨트) 착용의무도 있으나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노원구 추락사고 이후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한 고용노동부 북부지청의 한 관계자는 “일반 가정집은 고리를 걸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기껏해야 발코니 난간에 매달아야 하는데, 난간이 떨어져버리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시 사고에서 수리기사는 발코니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작업을 하다 난간이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해 사망했다. 관계자는 “사고 이후 본부 차원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등 주요 에어컨 업체에 방문 틈에 고정시킬 수 있는 휴대용 안전바(bar)를 갖고 다니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컨 가동시간이 대폭 늘어남에 따라 실외기 과열로 인한 화재사고도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이 덮치면서 올해 화재사고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소방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올해 6,7월 두달간 에어컨 실외기 화재사고는 총 20건 발생했다. 무더위가 8월 내내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따라 지난해 여름철(6~8월) 화재건수인 24건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소방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보통 실외기 화재는 기계적인 요인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점검을 자주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며 “노후화된 전기배선 등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열대야를 나기 위해 밤 늦게까지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발생하는 실외기 소음으로 인해 이웃집간 갈등도 잦아지고 있다. 서울시 환경정책과에는 지난 7월부터 하루 평균 5건의 환경분쟁조정 문의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로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옆집 에어컨 실외기 소음 때문에 밤새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다’고 호소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실외기 위치를 옮기게 하는 식으로 조정을 유도하지만 조정이 안될 경우에는 민사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장 에어컨과는 달리 가정집 에어컨 실외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현재 소음진동관리법이 규제하고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안전사고와 이같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실외기가 없는 에어콘’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냉방 면적이 적은 소형이라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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