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생한 남양주 지하철 폭발·붕괴사고 현장에서 안전수칙은 무용지물이었다. 안전시설은 애초에 없었고 규칙은 깡그리 무시됐다. 현장을 감독할 책임자는 자리를 비웠고 안전교육 대신 사고로 조사 받을 때를 대비한 사전 ‘말맞춤’ 교육자료가 등장했다.
4명이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은 지난 1일 남양주시 진접선 복선전철 주곡2교 지하 공사현장 폭발·붕괴사고는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가능하다.
당시 희생자 등은 산소와 LP가스를 이용해 철근을 자르는 용단작업중으로, 매일 작업 후 가스통과 산소통을 위험물 저장소에 보관하고 퇴근해야 했지만 현장에 방치했다는 사실이 조사 초기 드러났다. 이 사실은 이후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 5일 치를 분석한 결과에서 그대로 확인했다.
또 산소절단기에 연결하는 가스호스 역시 지하 작업장에 방치한 채 밸브만 잠그고 퇴근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다른 현장 안전수칙 역시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가스 폭발이 우려되는 현장이었지만 화재 감시인을 배치하라는 권고사항은 무시됐고 가스 누출 경보기와 환풍기 등 안전시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근로자 안모(60)씨는 “환풍기와 안전장치는커녕 디딜 계단도 제대로 없었다”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위에서 물이 떨어져 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고 열악한 현장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사고 당일 현장에는 시공사와 협력업체의 책임자도 없었다. 시공사인 포스코건설 담당 소장은 물론 현장의 실질적 책임자인 협력업체 매일ENC 소속 현장 소장도 자리를 비웠다. 당시 매일ENC 소속 과장과 차장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근로자에게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화재와 폭발사고 위험이나 가스 누출 유무 확인’과 관련한 안전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더해 현장의 안전을 관리·감독할 감리업체는 안전교육 대신 사고 후 책임을 피하고자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맞춤’ 교육자료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본부가 지난 3일 감리업체인 수성엔지니어링 사무실에서 압수한 파일에서 경찰이나 사고위원회 조사에 대비해 답변요령을 교육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문건이 발견된 것이다.
문건에는 ‘시공사에서 교육을 했다’거나 ‘사고 전날 가스 냄새가 없었다’는 등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들끼리 입을 맞추게끔 하는 요령도 포함했다.
공사현장의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들이다. 더 큰 문제는 전국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승현 정책국장은 7일 “건설 현장에 안전수칙이 있지만 전국 대부분 현장에서 번거롭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똑같은 사고가 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은 현장을 자주 옮겨 다니기 때문에 현장의 안전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없다”며 “공사를 책임지는 시공사 등이 최소한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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