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문제를 즐긴다는 게 모순적이지 않나. 임금체불 100일을 기념해 예술적으로 비꼬고 싶었다” (지호인 임금체불 파티기획자·24)
임금체불 사각지대에 놓인 프리랜서들이 ‘임금 체불 파티’를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미대생 프리랜서 지호인(24)씨는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임금체불 100일을 기념해 서울 문래동 소재의 한 창작공간에서 파티를 열었다. 지 씨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불합리한 임금체불 문제를 이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며 “임금체불 문제를 재미있게 즐기되 우리 주변이 흔히 있는 일임을 환기하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로 인정받기 힘들어 임금체불로 고통을 호소하는 프리랜서들이 자주 목격된다. 이날 행사에는 지 씨와 같이 임금체불 문제를 겪은 프리랜서의 발길이 이어졌다. 파티 공간은 협소했지만 50여 명이 참석해 행사장 밖까지 테이블을 놓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프리랜서가 ‘노동자’임을 강조하듯 이날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생산직 노동자를 상징하는 파란색이었다. 파란색 옷으로 복장을 통일한 참석자들은 푸른색 색소를 탄 ‘임금체불주’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최근 임금체불을 경험한 한 프리랜서 참가자는 ‘임금체불주’를 가리켜 “어쩐지 술을 먹다가 욕이 나오더라”며 해학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의류 디자인 업체로부터 70만원의 임금을 체불당한 지 씨는 당시 사건일지를 디자인 해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 판매했다. 여기에 가방과 옷에 부착할 수 있는 핀버튼, 임금체납 스티커 등도 제작해 파티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지 씨는 “제작한 물건들은 우리가 매일 살을 맞대는 물건”이라며 “자주 가까이하는 물건인 만큼 임금체납도 우리 주변에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 임금체불 근로자수는 29만 6000명, 임금체불액은 1조 3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회사와 직접 도급계약을 맺어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프리랜서들의 임금체불 실태는 이 통계에서 대부분 누락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는 노동청에 진정 요청했을 때 신상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또 다른 민원을 불러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그래서 현황을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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