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독일 아우쿠스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갑내기다. 구순이 넘는 나이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오른팔 이두박근에는 ‘타고난 잔소리꾼(BORN to NAG)’이란 문신이 선명하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 수장을 맡고 있는 거트 보일(Gert Boyle) 회장(92) 얘기다.
‘터프 마더(거친 엄마)’란 별명으로 유명한 보일 회장은 남다른 이미지를 구축한 손꼽히는 여성 CEO중 한 사람이다.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보일 회장이 자신의 인생을 풀어냈다.
“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오기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성별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나만의 장점을 내세우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겸손한 언행과 달리 패션업계에서 그가 이룩한 성과는 놀랄 만 한 수준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 건 남편이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난 1970년 이후부터다. 남편이 운영하던 아웃도어 용품 업체 경영을 맡아야 했다. “그야말로 사업에 ‘내던져진’ 상황이었습니다. 첫 출근날에 도대체 뭘 해야할지 몰라 정신이 멍했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멀쩡했던 회사가 도산 위기에 몰릴만큼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간신히 위기를 탈출한 그는 만 60세를 맞은 1984년,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진다. 백발의 보일 회장과 그의 아들 팀 보일이 출연한 광고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가 대박을 쳤다.
아들 팀에게 컬럼비아 재킷을 입혀 자동세차장 기계를 통과시키거나, 아들을 아이스링크와 함께 통째로 얼려 빨대로 숨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익살스런 광고였다. 보일 회장이 명실공히 ‘터프 마더’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컬럼비아 옷은 극한 상황에서 자식에게 입혀도 될 정도로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이미지를 얻게 됐어요. 유머러스한 광고덕에 컬럼비아 이미지가 급격히 상승하는 덕을 봤죠.” 그 덕에 컬럼비아는 미국, 캐나다를 넘어 아시아, 유럽, 중동 등 10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팔리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86세였던 2010년에는 집에 혼자 있다 무장강도를 만나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총을 들고 집에 쳐들어온 강도를 앞에 두고, 그는 한손으로 조용히 ‘무음 경보’ 버튼을 눌렀다. 이내 경찰이 출동해 강도를 체포했다. 보일 회장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위기에서 탈출했다.
보일 회장과 같은 ‘철의 심장’을 가져야만 여성 CEO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답변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보일 회장은 “평범한 여성도 얼마든지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할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나 역시 전업 주부때 몸에 배인 절약 습관이 사업을 하며 재무구조를 짜는데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사업을 잘 하려면 좋은 때와 장소를 알아보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여자의 직감이 좌우하는 분야죠.”
[홍장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