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대상으로 인사업무를 하는 인사혁신처가 민간기업처럼 연말연시 장기휴가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최근 인사처 임직원들에게 “24일까지 업무를 마치고 남은 연가를 모두 활용해 25일부터는 가족들과 연말연시 휴가를 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필수인력과 불가피한 업무가 남아 있는 주요 간부는 제외된다.
이 같은 파격적인 휴가제는 공직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어서 관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인사처 직원들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근면 처장이 직접 25일부터 휴가를 쓰겠다고 나서는 등 솔선수범하자 “진짜 연말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됐다”며 기대하고 있다. 공직사회에 연가 이월제가 시행되면서 남은 연가를 내년으로 이월시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인사처 직원들은 대체로 올해 내에 소진하겠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상당수 직원들이 남은 연가를 활용해 연말 휴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처에 따르면 4일 기준 인사처 직원들의 남은 연가 일수는 평균 5일이다. 이달 28일부터 31일까지 4일동안 연가를 신청하면 이달 25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최대 10일간 쉴 수 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여러 인사 혁신 실험을 단행하고 있는 이 처장은 공무원 휴가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한 바 있다. 삼성에서 30년 이상 인사업무를 해온 이 처장은 지난해 11월 신설 부처인 인사혁신처의 처장으로 발탁됐다. 이 처장은 평소 기회 있을 때 마다 “공무원도 장기휴가를 통해 삶을 가꾸고 이를 통해 얻은 활력으로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인사처는 이미 권장휴가제, 연가저축제, 계획휴가 보장제, 포상휴가제 등을 담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개정한 상태다.
이렇게 파격적인 휴가제도를 도입한 것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연가 사용일수가 10일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공무원이 지난해 사용한 연가 일수는 1인당 9.3일에 그쳤다. 평균부여 일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개정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은 ▲연가 저축제 ▲권장 휴가제 ▲계획휴가 보장제 ▲포상 휴가제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파격적인 제도는 연가 저축제다. 사용하지 않은 연가를 최대 3년간 이월해 일시에 쓸 수 있는 제도다. 계획휴가 보장제는 10일 이상 휴가가 필요한 공무원이 매년 1월 휴가계획서를 제출하면 저축한 연가를 쓸 수 있는 제도다. 연가저축제와 계획휴가 보장제를 결합하면 한달 이상의 ‘안식월’이 가능하다. 저축한 연가에 2년의 소멸시효를 두기는 했지만 누적된 연가를 사용하는 것인 만큼 사용일수·횟수에 일정기간 제한이 없다.
권장 휴가제는 기관장이 소속 공무원이 사용해야 할 권장연가 일수를 정한 뒤, 필요시 미사용연가에 대한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는 제도다.
이렇게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상사 눈치보기’ 때문에 실제로 이행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장·차관 같은 정무직이 연가를 3.6일로 가장 적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의식해 제도 도입에 나섰던 이 처장이 먼저 실천에 나선 셈이다. 공무원 노조에서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자칫 이것이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을 지 의심스런 눈빛을 내비치고 있다.
이 처장은 이외에도 성과가 뛰어난 공무원에게 성과급을 50% 더 주는 안을 도입하는 등 공직사회에 ‘민간 DNA’ 심기에 나서고 있다. 반면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철밥통 공직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여러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은 고위공무원단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시범 교육이 시작됐고 내년부터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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